[한국의 지하돌①] “일본 아이돌 코스프레 아냐?”…‘추앙’ 아닌 ‘성장’ 강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2.08.30 08:32
수정 2022.08.30 08:33

소규모로 탄탄한 팬덤 자랑

"현재 일본 지하돌을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 색깔 강화 필요"

홍대의 한 공연장. 애니메이션 주인공같이 예쁘게 차려입은 네키루 소하가 무대에 올라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관객 인원은 50~100명 남짓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며 공연을 즐긴다. 네키루는 일본의 언더 아이돌 문화인 '지하돌'이라는 포맷으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그룹이다. 지하돌은 주로 지하 공연장에서 활동한다는 의미로 불리는 말로, 무대가 끝난 후에는 자신들을 찾아준 팬들과 특전회를 통해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며 가까이에서 교감한다.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하돌 문화는 국민 그룹 AKB48이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 아래 소극장 공연을 이어가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번성했다.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이 미완성의 상태에서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 확산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기꺼이 만날 수 있다는 점과 특전회를 통해 교류하며 유대감을 높이 쌓을 수 있다는 점도 지하돌 문화가 가지는 특징들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역구 아이돌을 포함해 약 1만 명이 지하돌로 활동 중이다.


‘지하돌’, ‘지하 아이돌’이라고 표현하지만 걸그룹이 대다수다. 국내에서 ‘지하 남자 아이돌’을 찾아보기 힘들며 일본에서도 국내 남자 아이돌이 지하 라이브 공연장에서 ‘지하돌’과 유사하게 펼치고 있지만, 이를 지하돌이라 부르기는 무리가 있다.


'손에 닿는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행사인 공연 후 특전회(特典会)는 보통 악수, 사진, 대화, 촬영 중 원하는 항목과 멤버를 고르면 약 100초 동안의 시간이 주어진다. 여성 아이돌 그룹 키라메키 언폴런트의 프로듀서 헤나기는 "라이브 회 당 체키(즉석 사진) 촬영으로 버는 수익이 수십 만 엔에서 많게는 만 100만 엔을 초과하며 이는 전체 수입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친근한 아이돌' 표방…"팬 자체가 시장 커지는 것 원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부터 일본의 지하돌 문화를 이식한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키루가 지하돌 1세대로 불리고 있으며 소공녀 프로젝트, 리피문, 유라사이, 클릿츠, 겐테라, 케이케이디, 이로피로, 시그널라이즈, 시그나 시뮬레이션, 채리, 용맹호보, 키루, 마루마호 등 현재 약 3~40팀 정도가 소규모 극장에서 활동 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에서 지하돌의 소구 포인트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팬들의 응원을 받아 점점 성장해나가는 서사다. 이에 우리나라 아이돌처럼 뛰어난 실력이나 외모를 요구하지 않아 데뷔 진입 장벽이 낮다.


이는 우리나라도 지하돌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기업이나 매니지먼트가 뛰어든 산업이 아니며,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세계도 아니다. 다만 궁극적인 목표가 다르다. 일본 지하돌은 메인 아이돌 산업에 편입되기 위한 목표를 달린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하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도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하돌로 활동 중인 소공녀 프로젝트의 반설희는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애초에 진지한 사람보다는 취미로 접근하는 편이다. 동아리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한국 지하돌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전했다.


지하 아이돌 문화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오타카츠(덕질 활동), 오시(최애), 가치코이(유사연애), 츠나가리(아이돌과 팬이 사적으로 이어지는 것) 하코오시(모든 멤버를 좋아하는 행위), 타이방(여러 아이돌이 출연하는 라이브 이벤트), 카메코(카메라를 촬영하는 걸 중점으로 하는 팬), 핀치케(유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팬) , 데킨(민폐를 끼치거나 규칙을 어겨 출입금지 당하는 행위), 후리코피(팬이 아이돌의 안무를 따라 하는 것) ,특전회(라이브 후 아이돌과 교류하는 시간), 체키(아이돌과 찍는 폴라로이드 사진) 등 일본에서 쓰는 단어를 그대로 차용한다.


일본에서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가 기형적으로 변화해 부작용을 낳았던 사례와 왜식이 짙은 탓에 외부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것은 한국 지하돌 문화 앞에 놓인 과제다. 네키루 소하는 "개성 있고 열심히 하는 팀들이 많으니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더 큰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싶다. 아직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강하고, 우리만의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네키루는 현재 오리지널 곡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예전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지하돌을 소비하는 팬들은 이 문화가 확산되거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나만 알고 싶은 아이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팬이 많이 유입될수록 특전회, 물판 등의 비용도 상승되니 '친근한 아이돌'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가 규이는 "문화가 유입이 돼야 시장이 커지는데 정체가 길어지면 한계가 있다. 애초에 한국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든 서브컬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곡을 내는 등 현지화해서 대중에게 더 알려지기 위해 노력하는 팀들도 있다. 이 노력들이 뒷받침되거나 이어진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일본의 지하돌을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이라 외부에서 보면 코스프레 동아리처럼 자기들끼리 놀고 즐기려고 모이는 것 아니냐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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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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