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언급한 ‘데이터’ 악화일로...한은, 빅스텝 초읽기
입력 2022.07.03 06:00
수정 2022.07.01 15:37
기대인플레·물가 최고치 경신, 무역수지 ‘적자’
연말 금리 3% 시대 개막 전망...이자부담 ‘한숨’
“(금리 인상의)양과 속도에 대해 데이터를 보고 금통위원들과 적절히 판단해서 결정하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1일 물가안정 목표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p 인상)’ 여부를 두고 답한 말이다.
한은이 데이터 디펜던트(경제지표 의존) 통화정책 의지를 밝힌 가운데 열흘 동안 나온 경제 지표들은 암울한 수준이다.
3일 금융가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부정적인 경제지표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이 총재의 발언대로라면 이달 한은이 사상 처음으로 단행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기대인플레 4% 육박…물가 상승률 6% 넘나
우선 한은이 가장 주시하고 있는 기대인플레이션 수치가 악화됐다. 지난달 29일 한은이 공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10년 2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으면 물가 상승률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원자재가 상승으로 교역조건도 14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5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5.33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6% 하락했다.
이는 물건 하나를 수출해서 받은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건이 0.85개라는 의미로 교역조건이 나빠지면 국민 실질소득이 줄고 경상수지가 나빠지고 무역적자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국내 상반기 무역수지가 103억 달러(한화 약 13조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핵심 데이터인 이달 소비자물가 인상률은 6%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7%로 상향 조정한 가운데 당분간 5%대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물가 상방리스크로 주요 전망기관들이 6월 물가를 5% 후반, 혹은 6%대로 예상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6월 또는 7~8월 6%의 물가상승률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6% 물가는 지난 1998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처음이다. 제 1책무가 ‘물가 안정’인 한은으로썬 물가가 6%를 넘어가면 빅스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상승을 저지할 만한 카드가 금리 인상 말고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도 빅스텝을 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현재 한국(1.75%)과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1.50~1.75%)은 1.75%로 동일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스텝 또는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는 한은이 최소 빅스텝을 단행하지 않으면 기준금리 역전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금리가 역전되면 자본 유출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연말 기준금리 3.00%...부채공화국 ‘적신호’
한은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신영증권은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금통위가 이달 빅스텝에 나서고 연말 기준금리가 최대 3.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6·7월 0.75%p, 9월 0.50%p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분간 주요국의 가파른 긴축이 진행될 것으로 보여 빅스텝을 한다면 7월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과 씨티그룹, SK증권도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0.5% 올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탰다. 앞서 JP모건도 한은이 7월 빅스텝에 이어 8·10·11월 기준금리를 0.25%p씩 추가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 3.0% 도달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빅스텝을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한은이 0.25%p 넘게 금리 인상을 한 적이 없다며 보수적으로 봤다. 골드만삭스도 한국의 연말 기준금리는 각 0.25%p씩 4번을 올려서 2.75%에 머물것으로 관측했다.
오는 5일 발표되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빅스텝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빅스텝 단행시 커지는 이자부담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부메랑이 될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를 돌파한 상태로 금융당국의 경고로 6%대 후반으로 내려갔지만 빅스텝 단행시 연말 8%대가 유력하다. 신용대출 금리 역시 6%대로 올라서는 건 시간 문제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정부 흑자 규모는 커졌지만 민간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다. 1분기 기준 국내 가계부채는 1859조원을 상회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06%, 즉 소득보다 부채가 2배를 넘어서며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