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희자매’ 김효선, 남편 강진과 미니앨범 발매 “다시 가수 할 줄 몰랐다”
입력 2022.05.10 08:04
수정 2022.05.10 08:05
36년 만에 가수로 돌아와 ‘내가 꽃인 줄도 모르고’ 공개
1978년 오디션을 통해 3인조 디스코 걸그룹 ‘희자매’의 멤버가 된 후, 불과 2주 만에 모든 래퍼토리의 노래와 안무를 익힌 후 바로 무대에 투입됐던 가수가 있다. 현재는 가수 강진의 아내이자 매니저로 불리지만, 김효선은 8년을 원조 걸그룹 ‘희자매’로 산 가수였다.
지난 1977년 결성된 ‘희자매’는 인순이를 선두로 김재희, 이영숙 세 멤버가 뛰어난 가창력과 화려한 안무, 파격적 의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인순이의 탈퇴로 활동 중단 위기에 놓이자, 안타프로덕션과 매니저 한백희(가수 김완선의 이모로 가수 출신의 한국 최초 여성매니저)는 긴급 오디션을 통해 춤과 노래가 되는 여성 가수들 가운데 새 멤버를 영입했다.
주로 팝송을 부르는 3인조 걸스밴드를 하고 있던 김효선은 오디션에 지원한다는 동료를 따라 참가했다가 합격의 행운을 안았다. 김효선은 1978년 7월 ‘희자매’가 된 이후 4집에서 7집, 마지막 앨범이 된 ‘사랑합니다’를 함께하며 1986년까지 활동한 후 가수 생활을 접었다.
“당시 모든 스포츠신문 1면에 인순이를 대신할 가수로 김효선이 발탁됐다는 기사들이 대서특필됐어요. 얼떨떨했죠. 갓 스물 나이에 곧바로 합숙 생활을 시작했고, 2주 만에 모든 레퍼토리를 익히니 놀라움을 사고 칭찬을 받은 게 어린 마음에 좋았어요. 그렇게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어려운 무명 시절 없이 곧바로 박수받는 무대로 투입됐어요. 매니저분, 밥해 주시는 언니, 우리 멤버가 한 아파트에 모여 살았고, 해주는 밥 먹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노래와 춤 연습하다 공연이나 행사하러 가고, 전국 어디든 갔다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자는 생활이 계속됐어요.”
“가수가 뭔지 그 의미와 소중함을 알았다고는 말 못 하겠어요. 언니들이랑 같이 지내는 게 소풍 온 것처럼 재미있고 노래하는 게 좋았고, 같은 생활이 반복되자 조금씩 지쳐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진 씨 만나 1987년 결혼하게 되고 두 언니도 국제결혼을 하면서 막상 해체를 맞았을 때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시원섭섭했다는 게 맞아요. 그렇게 기꺼이 가수의 길을 뒤로 했습니다.”
만 8년을 가수로, 원조 ‘군통령’(군 위문공연에서 큰 인기를 호령하는 가수를 일컫는 말)으로 인기를 끌다 홀연히 연예계를 떠난 게 아쉽지는 않았을까. 게다가 남편이 가수인데, 노래를 곁에 두고 살면서 다시 가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지 궁금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삶도 좋았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한 집에서 가수가 둘인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먼저 강진 씨한테 한 사람만 하는 게 좋다, 노래 잘하는 당신을 내가 밀겠다고 말했어요. 가수 강진의 매니저가 되어 생전 처음 언론사에 앨범 돌리러 갈 때는 긴장도 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이쪽 일을 전혀 모르는 입장이 아니다 보니, 가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매니지먼트 할 수 있었고요.”
‘남편이 가수 강진인데 아내인 내가 가수 할 일은 없다’던 그가 신곡을 받아 미니앨범을 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게 참 기가 막혀요,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일들이요. 고인이 되신 허참 선배님이 ‘아내는 지금’이라는 노래를 유언으로 강진 씨한테 주셨잖아요. 강진 씨가 노래 가사가 자기 얘기 같다고 외울 필요도 없다며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 역시 ‘희자매’ 노래 ‘실버들’을 비롯해 최헌의 ‘오동잎’ 등 많은 히트곡을 내신 안치행 선생님 사무실에 놀러 갔는데, ‘한 번 불러 봐’ 하시며 ‘내가 꽃인 줄도 모르고’ 악보를 주시는 거예요. ‘에이, 저 노래 안 해요’ 하며 곡을 봤는데 가사가 그냥 딱 제 지나온 삶이에요. 저도 그렇고 많은 여자분이 자신이 꽃인 줄도 모르고 누구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왔잖아요. 사실은 우리도 꽃인데요. 가사가 마음에 와 꽂히면서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곡가 안치행은 밴드 ‘영사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당시 ‘달무리’ ‘등불’ ‘긴 머리 소녀’로 인기를 모았고,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편곡자로 유명하다. 김효선은 이번에 독집을 발표할 수도 있었는데 남편과 함께 냈다. 남편 강진의 노래(막걸리 부르스), 아내 김효선의 노래(내가 꽃인 줄도 모르고), 부부가 함께한 노래(비가 된 사랑)를 넣어, ‘부부 앨범’으로 꾸민 이유가 있을까.
“36년 만에 가수로 돌아와 곡을 내는 거예요. 10곡 받아 정규앨범을 내는 건 너무 거창하고, 오랜만의 첫걸음으로 과하다 싶었어요. 또 제가 옛날 사람이다 보니, 남편이 신곡으로 활동하는 시기라는 것도 아내로서 부담이 됐고요. 남편과 함께 종종 방송에 동반 출연하는데, 함께 노래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아요. 늘 다른 가수 노래 가운데 남녀가 같이 부르기 좋은 노래를 택하는데, 이참에 우리 둘이 노래를 내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앨범을 내는 데 큰 용기를 줬네요.”
가수 강진에게 ‘막걸리 한 잔’ ‘붓’ 등의 노래를 강력히 추천해온 김효선. 평소 노래를 정확히 듣고 남편에게 맞는 노래, 오래 남을 명곡을 족집게처럼 선곡하기로 유명하더니 역시나 가수였다. 담백한 감성과 깨끗한 가창력으로 매끄럽게 곡들을 소화했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너무나 곱다. 남에게 주긴 아까운 멜로디인 것도 단번에 알았으리라.
“에이, 잘 불렀다고 하면 부끄럽고요. 안치행 선생님께서 ‘순진하게 불렀다’고 평해 주셨어요. 기교 없이 깔끔하게 불렀다는 말씀일 거예요. 노래 들어본 분들이 목소리 예쁘다는 얘기는 많이 주시네요. 그 정도면 된 거죠. 저는 여전히 강진의 아내 자리가 좋은걸요.”
독창한 ‘꽃인 줄도 모르고’도 좋고, 남편과 한 사람인 듯 부른 ‘비사랑’은 서로를 흠뻑 응원하고 세상 사람들의 귀를 촉촉이 적실 노래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또 나란히 서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남편 없이 홀로 무대에 서서 자신이 곱디 고운 ‘꽃인 줄도 모르고’ 풀처럼, 우리를 지탱해주는 곡식이 되는 벼처럼 살아온 세월을 지닌 세상의 뭇 여성들에게 ‘당신은 꽃’이라고 일깨울 날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