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그게 뭐여?"…신한은행 월계동 지점 폐점에 반발하는 노인들
입력 2021.12.19 00:43
수정 2021.12.19 12:31
"30년 은행과 상생했고, 다수가 노인들" 주민들 강력 반대…"디지털 업무 가르쳐줘도 어렵다"
신한은행 주민간담회 개최…"완충기간 두며 상주 직원 2명이 도울 것, 창구업무와 거의 똑같아"
간단회 참석 노인들 "못배워서 무슨 말인지 솔직히 몰라…창피해 질문도 안해, 멀어도 딴 데 갈 것"
전문가 "정부, 노인 위한 선제적 디지털 교육 적극 추진…은행도 속조조절·연착륙에 집중해야"
최근 은행들이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지점 폐쇄를 결정하자, 지역 주민들이 '노인 디지털 소외'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은행은 노년층들도 디지털 은행 업무를 보는데 불편이 없도록 돕겠다는 입장이지만 고령층 노인들은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은행 모두 노인들이 디지털 사회에서도 연착륙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 월계3동의 공공도서관에서 신한은행 등의 주최로 '디지털 라운지 전환 주민간담회'가 열렸다. 앞서 신한은행은 내년 2월 월계동 지점을 폐점하고 디지털 라운지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는데, 월계동 주민들은 주민 불편과 노인 소외를 이유로 폐점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1일 주민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반대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등 단체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1만 세대가 월계동 지점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용 고객들 중에는 고령층이 많아 은행 직원이 상주하며 대면으로 운영되는 창구 점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어르신들이 전자기기 사용을 어려워하고, 2km 이상 떨어진 다른 지점을 이용하기엔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가 강하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20여명의 주민들은 대부분 연세가 있는 고령층이었다.
간담회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 권성회(82) 주민대책위 공동대표는 "우리동에 8000세대가 살고있는데 거의 노인이고 기계 조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창구에 가서 대화를 하고 직원들이 알아서 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주민 한성백(56)씨도 "왜 하필 폐쇄하는 지점이 월계동이느냐"며 "30년간 주민과 은행이 상생해왔는데 기업 이윤 측만 생각하는 결정이 아닌지 다시 한번 재고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측은 화상상담으로 업무가 진행되어도 안내 직원을 두어 어르신들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신한은행은 당초 디지털 라운지에 상주하며 안내를 돕는 직원 1명을 두려고 했지만 계획을 수정해 상주 직원을 2명으로 늘리고, 2개월 동안 창구 지점과 디지털 라운지를 함께 운영하는 '완충 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은행 측 관계자는 "많은 어르신들이 화상상담, 기기 업무가 불편하고 실수를 할 것 같다며 우려하시는데 옆에서 안내 직원이 하나하나 도와 드릴 것"이라며 "디지털 라운지에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창구 업무와 똑같이 쉽게 업무를 보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디지털 라운지를 이용하신 90대 어르신들이 '나도 할 수 있다'며 뿌듯해 하셨다"고 전했다.
공과금 납부, 통장 입출금 등 주민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일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한번 이용이나 해보자"는 반응도 나왔다. 주민대책위 공동대표인 김태하(82)씨는 "간담회 듣기 전에는 울분이 컸는데 은행 측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며 "다만, 출장소와 디지털 라운지를 함께 운영하면서 노인들이 디지털 업무에 완전히 적응이 되면 디지털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 대다수는 여전히 디지털 업무에 자신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민 송옥순(81)씨는 "나는 학교도 안나오고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며 "창피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불편해도 멀리 있는 다른 지점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영자(65)씨도 "옆 동네 지점 갈 수 있는 교통수단도 없다"며 "간단하게 돈을 찾고 부치는 것도 젊은이들이야 편하겠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해당 점포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대면 은행 점포는 크게 줄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5대 시중은행의 점포 폐쇄 계획을 보면, 이들 은행들은 지난달 11월까지 모두 203개 점포를 폐쇄했다. 개별로 보면 신한은행이 75개로 가장 많은 점포수를 줄였고, KB국민은행은 53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31개, NH농협은행은 13개 점포를 폐쇄했다.
줄어드는 은행 점포로 기계조작 등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노인들이 타격을 입는다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고령층이 현금인출을 위해 금융기관 창구를 이용하는 비중도 53.8%로 전체 평균 25.3%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고령층의 현금 이용, 대면거래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점포 축소는 고령층의 불편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둘러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교육을 적극 시작해야 하고, 은행은 금융 공공성 성격을 지닌 만큼 디지털화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노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또 더 빨리 배운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배우는 노인들의 은행 업무를 돕는 이른바 '노노케어'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통 85세 이상 노인들은 디지털 업무를 옆에서 알려줘도 따라가시는 게 대단히 어렵다"며 "은행이 대출 이자 등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불편해하는 노인들을 위해 급격한 디지털화보다는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