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지옥’ 속에 숨겨진 의미
입력 2021.12.02 14:19
수정 2021.12.02 14:19
넷플릭스 ‘지옥’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연상호 감독)이 ‘오징어게임’에 이어 또다시 전 세계 인기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속에서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정점을 찍은 것이다. 지난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에 이어, 이번 뉴욕 독립영화제 고담어워즈에서는 ‘오징어게임’이 장편부문 수상을 했다. 내년에도 영화제 수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K-드라마의 신드롬은 계속될 예상이다.
세계인은 왜, K-드라마에 빠진 것일까. 세계가 K-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한국 고유의 문화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외국인들에게서 외면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적 특성을 살린 독특한 소재들과 극적인 반전으로 몰입을 높인 스토리 구조는 K-드라마만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성비가 좋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서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가 열광한 K-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많이 담겨있다. 불평등과 불공정 이슈가 빠지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부터 드라마 ‘킹덤’, ‘오징어게임’ 그리고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민들의 늘어나는 부채와 치솟는 집값 등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를 상기시키면서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빈부격차 문제를 조명하고 있으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상금 456억원을 얻기 위해 빚에 떠밀린 서민들이 벌이는 치열한 생존게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여기에 ‘지옥’은 대중의 공포를 양분 삼아 권력을 장악한 이들에 의해 비이성적으로 돌아가는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사회의 모습을 지적한다.
불평등과 불공정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K-영화와 드라마가 이러한 이슈를 선점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한국사회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저성장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최근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민의 잘살려는 높은 의지도 역할을 한다. 남보다 잘살려는 욕망이 강한 만큼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불공정은 심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부(富)에 대한 관심과 평등에 대한 욕구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화된 사회가 겪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러시아에는 ‘이반의 염소’라는 우화가 있다. 어느 마을 이반이라는 사람이 염소 한 마리를 키워 젖을 짜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반을 부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동네 사람들에게 소원 한 가지를 말해보라 하면서 염소를 한 마리씩 주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기들이 염소를 받는 것보다, 이반의 염소를 죽여 달라고 말했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화된 나라는 성장할 수 없으며 더 잘 살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변이인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불황의 터널은 더욱 길어질 것이 예상된다.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세계적으로 불평등은 더욱 커지게 되고 법과 질서를 벗어나려는 불공정도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 역시 갈등이 증폭되면서 높아진 사회적 불안이 K-영화와 드라마 속에 묻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K-드라마의 세계적인 인기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으며 K-영화와 드라마 인기가 시사하는 숨겨진 의미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