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물어보니 ⑰] 엄마 성 써라, 첫 판결 반갑지만…아직도 '머나먼 길'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입력 2021.11.11 05:07
수정 2021.11.10 22:04

서울가정법원 '자녀에게 엄마 성 물려주겠다' 부부 신청 허가

법조계 "성평등 가정서 아동 자랄 권리를 자녀 복리로 인정한 첫 사례" 의의

"혼외자 등 아버지 인지하지 못한 가정에서 어머니 성 따른다는 사회적 인식 여전"

"대법원 판결 아니어서 향후 전망 불투명"…여가부 '부모 협의' 민법개정 추진·법무부 '신중론'

법원이 자녀에게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깨고 어머니 성으로 바꾸게 해달라는 부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성평등주의에 입각해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게 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부모 성 가운데 어느 것이든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의 지속적인 법 개정과 국민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일 서울가정법원은 한 부부가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며 지난 5월에 낸 '자의 성과 본의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여 올해 5월에 태어난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쓰도록 허가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양성평등 의식을 체득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어머니 성을 물려주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혼인 중인 부부가 성평등을 위해 자녀의 성·본 변경 청구 허가 결정을 받아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 자녀의 성 결정 방식이 여전히 부모 협의 원칙이 아닌 부성 우선주의 원칙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신윤경 변호사는 "성평등 가정에서 아동이 자랄 권리를 자녀의 복리로 인정한 첫 사례라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완전히 폐기하고 부부간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과 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확실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신 변호사는 "이번 성 변경 신청은 민법에 따른 결정이라 청구만 하면 쉽게 받아들일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혼인 중인 부부가 자녀의 성을 어머니 성으로 바꾸려 해도 기각되는 경우가 많고, 이번 판결 역시 대법원 판결이 아니다 보니 다른 판사에게 유사한 사건이 배당될 경우 같은 판결이 나올지 불투명하다"고 우려했다.


신 변호사는 특히 "사회적으로 혼외자 등 아버지를 인지하지 못한 가정에서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하다"며 "부성 우성주의 원칙에서 부모 협의 원칙으로 민법이 바뀌면 편부모 가정에서 어머니 성을 따랐다고 좋지 않은 인식을 받는 경우는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혼인신고 때가 아니라 아이 출생신고 때 따를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해야 실효성이 생긴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무조건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부부가 협의해서 자녀의 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 시점도 혼인신고 때가 아닌 자녀의 출생신고 시점으로 늦춰 제도와 법으로 선택권을 넓혀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어머니 성도 결국 아버지 성을 따른 것인데 무슨 의미냐'는 일각의 반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계 혈통주의 사고방식이 강한 탓에 어머니 성으로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별나다' '굳이 왜 저러느냐' 등의 비아냥을 듣는다"며 "가족의 개념을 보다 다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와 협의해 '부성 우선주의' 대신 '부모 협의' 원칙을 적용하는 민법 조항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법무부는 "부모 협의가 안 됐을 때는 어떤 원칙으로 성을 정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세웠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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