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이수혁, 더 이상 모델 아닌 배우로
입력 2021.06.02 12:08
수정 2021.06.02 13:25
2011년 KBS2 드라마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연기 시작
'파이프라인' 황건우 역으로 출연
배우 이수혁을 떠올리면큰 키외 차가워보이지는 마스크, 중저음의 목소리로 도회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영화 '파이프라인'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가져가되 빈틈을 활용해 입체적인 캐릭터 황건우를 만들어냈다.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 그들이 펼치는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로,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를 연출한 유하 감독의 신작이다. 이수혁은 재벌 2세이자 범죄판을 짜는 설계자 건우 역을 맡았다.
"유하 감독님이 기존에 제가 모델 활동과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차가운 이미지를 보고 호감을 표해주셨어요. 제가 영화에 나왔을 때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다고 말씀해주셨죠. 감독님의 머릿 속에 정확한 그림이 구상돼 있었기 때문에 저는 디렉션에 최대한 따르려 했어요."
이수혁도 '파이프라인' 황건우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한정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 촬영에 집중했다.
"이번 현장에서는 유독 거울이나 모니터로 제 모습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며 표정이나 자연스러운 제스처에 더 몰두했죠. 그런 부분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생소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의 이수혁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파이프라인'을 보면서 저조차도 못봤던 표정들을 봤어요. 스포일러라서 어떤 장면인지 말씀드릴 순 없지만 노력한 만큼 나온 것 같아요."
이수혁에게 '파이프라인'은 2013년 '무서운 이야기2' 이후 8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오랜 만의 영화 작업을 유하 감독과 함께 할 수 있어 안도와 의지가 됐다.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너무 사랑해요. 하루종일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요. 영화에 나오는게 꿈인 제가 유하 감독님,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할수 있어 너무 설렜죠. 영화에서 주연은 거의 처음이라 연기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도 달랐어요. 심적으로 부담감도 있었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기쁩니다."
작품 속 악역은 다른 배역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 자주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이수혁은 악역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 한층 더 넓어진다고 확신했기에 부담보다는 욕심이 났다.
"아직 저는 작품을 고른다기보단, 선택을 받는 입장입니다. 역할의 선함이나 악함을 떠나 좋은 제작진 분들이 기회를 주면 언제든 함께 하고 싶어요. 현실에서 악인은 존재하면 안되지만 작품 안에서는 배우로서 욕심이 나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도 모르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요."
이수혁은 tvN '고교처세왕', '어느날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이어 영화 '파이프라인'까지 서인국과 세 작품을 함께 했다. '고교처세왕' 촬영 당시에는 각자 주연으로서의 무게감을 소화하기 위해 친해지기보단 연기에 열중했기에 친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세 작품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서로가 어떤 컨디션인지, 무엇을 원하는지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됐다.
"(서)인국이 형과는 연기 스타일, 지향하는 바가 달라요. 그래서 서로 각자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조언해줄 때가 많죠. 개인적으로 연기에 만족을 못해도 좋게 봐줄 수 있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요. 인국이 형을 처음 알았던 게 7년 전인데, 한 번도 현장에서 짜증이나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주위에 사람이 넘쳐요. 인국이 형이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될 때가 많아요."
서인국은 인터뷰에서 이수혁과 또 재회한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괴롭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수혁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는 그런 생각해주는 것조차 너무 고마워요. 지금까지 함께한 작품에서 상황과 캐릭터는 다르지만 대립하는 구도였어요. 이런 구도를 바꿔서 촬영해보면 보는 분들도 신선하고 저희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2006년 정욱준 Lone Costume 패션쇼에 서며 모델로 데뷔한 이수혁은 2011년 KBS2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연기한 지 10년이 됐고 이종석, 김우빈 등과 함께 모델 출신 배우 대표주자로 꼽힌다.
"저는 모델보다 배우의 꿈을 먼저 꿨어요. 처음부터 최종 목표는 배우였죠. 생각보다 모델로 예쁨을 많이 받아 좋은 기회를 얻었어요. 대신 아직까지도 모델 활동을 하며 구축한 이미지를 깨지 못했죠. 제게 좋은 영향을 준 감사한 추억이지만, 언젠가는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이수혁은 더 다양한 역할을 맡기 위해 체중을 늘려보기도 하고, 발성을 바꿔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캐릭터보다는 친숙한 역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다.
"이제 조금씩 저를 모델이 아닌 배우로 봐주면서 다양한 역할의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대중에게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 같아 배우로서 늘 갈증이 있었어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요. 최대한 폭을 넓혀서 인사드릴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어요. 다음에 또 다른 이수혁의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