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아이오닉 5 "미래에서 왔니?"…"아니 이게 현실이야"
입력 2021.04.23 08:00
수정 2021.04.23 02:47
사이버틱한 외모에 더 사이버틱한 운전석…시뮬레이터 조작하는 느낌
넓은 실내공간에 다양한 활용성…4분 충전에 주행거리 70km 늘어
과거의 전기차는 소비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었다. 평범한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은 얼굴을 하고 내연기관차와 최대한 비슷한 조작 방식으로 “겁내지 마, 당신이 타던 차량 별 차이 없어”라고 살살 달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2021년생 아이오닉 5는 전혀 태도가 다르다. 누가 봐도 전기차 티가 팍팍 나는 얼굴을 하고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확연히 다른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인다. “이게 앞으로 당신이 맞이할 전기차 세상의 현실이야. 순순히 받아들여.”
지난 21일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 하남 야외주차장에서 열린 미디어 시승회에서 아이오닉 5를 만나봤다. 시승차로는 아이오닉 5 롱 레인지 2WD(2륜구동) 모델이 준비됐다.
하남에서 출발해 경기도 남양주시 글램핑장인 ‘더 드림핑’을 찍고 초급속 충전기가 설치된 서울 강동구 현대 EV 스테이션에서 충전 체험을 하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80여km의 코스였다.
아이오닉 5의 디자인은 독특하다.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때 보던 현대차의 첫 고유모델 포니의 헤리티지를 계승했다지만, 일부 디자인 요소만 가져왔을 뿐 전체적인 인상은 ‘레트로’보다는 ‘사이버틱’에 가깝다. 게임이나 SF 영화 속 캐릭터가 현신한 듯하다.
실내는 더 독특하다. 평평한 바닥에 리클라이닝 시트 두 개와 벤치 하나를 얹어놓은 듯한 구조다. 종아리 오른 쪽이 휑한 게 뭔가 허전하다.
운전할 때의 느낌도 예사롭진 않다. 운전대 앞엔 좌우로 긴 판대기(?) 하나가 놓여 있는데 반쪽은 속도를 보여주고 반쪽은 지도를 보여준다.
변속기 조작은 운전대 밑으로 튀어나온 막대기(?)를 이용해야 한다. 어느 수입차의 그것처럼 막대기를 올리거나 내리는 게 아니라 막대기 끝을 돌려 전진과 후진을 결정해야 한다.
사이드미러가 있어야 할 자리엔 조막손 같은 카메라가 삐죽 튀어나와 있고 문짝 안쪽으로 붙은 작은 화면을 통해 후측방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과할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앞차의 엉덩이에 숫자와 화살표들을 투사한 듯한 느낌이다. 창을 통해 보이는 실물과 HUD 화면이 어우러져 마치 VR(가상현실) 고글을 쓴 듯한 착각까지 든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 전까지는 차를 운전하는 것인지,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넣고 자동차 시뮬레이터를 조작하는 것인지 혼동이 왔을 정도다.
실내 모습은 기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오롯이 꾸밈새만을 노린 듯한 디자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적으로 반듯반듯하고, 어느 부분이 파였다면 그건 그 자리에 무엇인가를 박아 넣어야 하기 때문에 파 놓은 것이다. 냉혹할 정도로 심플하고 실용적이다.
주행감은 또 어떠한가. 기승전결이 없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좀 낑낑대다 본격적으로 힘을 내는 과정이 있어야 밟는 재미가 있는데, 이 녀석은 허무하게도 과정 없이 바로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한동안 도로를 달리다 보니 의외로 금방 익숙해진다. 원래 차가 이래야 되는 게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실 우리가 ‘운전자의 독립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내연기관차의 특성상 변속기 공간을 마련하느라 불가피하게 조성된 ‘고립된 공간’이었고, 뒷좌석 좌우 사이에 튀어나온 센터 터널도 거추장스러운 구조물이었을 뿐이다.
기어봉을 밀고 당기는 변속 방식도 오른손을 쓸 데 없이 바쁘게 만드는 요인에 불과했다. 좌우에 귀처럼 튀어나온 사이드미러도 오랜 시간 봐 와서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원래부터 없었다면 그게 달린 차가 더 기괴해 보였을 것이다.
달릴 때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일을 시키면 요란하게 떠들어대다 겨우 끝내는 부하직원이 좋은가, 시키자마자 군소리 없이 척척 해내는 부하직원이 더 좋은가. ‘부릉부릉’거리며 단계적으로 회전수를 끌어올리는 내연기관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전기가 전달되면 곧바로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모터가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현대차가 내연기관차와 결별하는 과정의 첫 걸음에 해당하는 아이오닉 5지만, 오랜 기간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오며 쌓은 기술력은 오롯이 이 차에 배어 있다.
스케이드보드 같은 E-GMP 플랫폼에 차체를 얹었다 해서 살짝 의심도 했었지만 고속주행 안정성이나 정교한 핸들링은 확실히 정통 완성차 업체의 DNA를 물려받은 듯하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느낌도 부드럽다. 바닥이 마룻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승차감까지 딱딱한 바닥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쓸데없는 구조물을 비워낸 실내는 공간 활용의 융통성을 높여준다. 중간 기착지인 ‘더 드림핑’에 차박 콘셉트로 전시해 놓은 아이오닉 5를 보니 반으로 접힌 2열 시트가 바닥에 납작 달라붙어 넓고 평평한 공간을 제공해준다.
기본적으로 전고가 높은 차인데다, 접힌 시트의 높이도 낮으니 누워서도 갑갑하지 않은 천장 높이를 확보해준다.
땅딸막한 외형으로 인해 아이오닉 5의 차체 사이즈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실내공간은 상당히 넓다. 좌우 폭은 중형 SUV 싼타페 정도고, 앞뒤 길이는 준중형 SUV 투싼과 비슷해 보인다. 전장은 짧지만 축거(휠베이스)가 길어 실내 공간을 많이 확보했다.
3000mm에 달하는 아이오닉 5의 축거를 거론하며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축거 2900mm)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정도까진 아니다. 앞뒤 공간이 팰리세이드만큼 나왔다면 3열 시트를 장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폭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유니버셜 아일랜드’라 불리는 센터콘솔은 앞뒤로 140mm나 움직일 수 있어, 앞으로 바짝 당기면 운전자용 암레스트로, 뒤로 바짝 밀면 뒷좌석용 간이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 센터콘솔 밑 공간은 개폐식이 아니라 넓게 뚫려 있어 핸드백 등 큰 소지품을 놓아두기 적합하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5 출시 전부터 침이 마르게 자랑했던 V2L(Vehicle to Load) 기능 역시 이 차의 활용도를 높여준다. 외부 충전구 쪽은 물론, 실내에서도 220V 전원을 끌어다 쓸 수 있다.
강동구에 위치한 현대 EV 스테이션에서는 초급속 충전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당초 100% 완충을 해볼 예정이었으나 일부 시승 구간 정체가 심해 일정이 지체된 관계로 단 4분의 충전 시간이 주어졌다.
충전기를 꽂기 전 50% 미만이었던 배터리 잔량이 4분 충전하고 나니 63%까지 올라왔다. 200km 언저리였던 주행가능거리도 270km까지 늘었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5 최초 공개 당시 밝힌 ‘5분 충전으로 최대 100km 주행 가능’(유럽 인증 WLTP 기준)과 얼추 맞아 떨어지는 충전 속도다.
배터리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8분 정도라고 한다. 여전히 휘발유나 경유를 주유하는 것에 비하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급속충전소만 충분하다면 차량 운행에 심각하게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충전기를 연결해 놓고 잠시 볼일을 보고와도 된다. EV 스테이션의 급속중전기에는 멀리서도 차량의 충전상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위쪽에 커다란 원형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원의 테두리를 감싸는 파란색 조명의 길이가 충전 중인 차의 배터리 잔량을 의미한다.
앞으로 이런 충전소가 많이 생길수록 거리에서 아이오닉 5와 같은 전용 전기차도 많이 눈에 띌 것으로 생각된다.
초면은 어색했지만 두어 시간 정도 함께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진다. 더 익숙해지기 전에(그래서 내연기관차의 불편함을 온 몸으로 깨닫기 전에)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승차인 아이오닉 5 롱 레인지 2WD 모델의 가격은 트림별로 4980만~5455만원이다. 4륜구동인 롱 레인지 AWD는 5280만~5755만원으로 300만원가량 더 비싸다.
전기차에 적용되고 있는 개별소비세 혜택(최대 300만원)과 서울시 기준 구매보조금 1200만원을 반영하면 준대형 세단 그랜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 부담이 낮아진다.
▲타깃 :
- 예전부터 전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주위에서 전기차임을 몰라줘 억울했던 분.
- 얼리어답터, 환경운동가.
▲주의할 점 :
- 외부일정 중 업무 지시가 떨어졌을 때 “이동 중인데 노트북 배터리가 바닥났어요”라는 변명은 안 먹힌다.
- 급속충전소에서의 충전은 빠르지만 아직 몇 군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