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④] 겨우 서른,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입력 2021.03.11 00:00
수정 2021.06.29 08:53
중국에서 지난해 7~8월 방송되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중국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이 화제다. 무협 소재의 중국드라마가 아니라 현대적 드라마를 이 정도로 많은 이가 보고 이토록 설왕설래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싶다.
서른 살을 앞둔 세 명의 여자 구자(퉁야오 분), 만니(장수잉 분. 매기 지앙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 샤오친(마오샤오퉁 분)의 각기 다른 고민과 이를 헤쳐나가는 세 사람의 우정을 현실적으로 그려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세 여성이 놓인 처지와 직업에 따라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속도감 있게 풀어나가는 것도 호평을 부르지만 구자, 만니, 샤오친의 뚜렷하게 대별 되는 개성도 재미요소이고, 세 배우의 미모와 매력도 인기 요인이다.
구경만 하게 하지 않는 것, 나는 이 가운데 누구일까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것도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깊게 한다. 필자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은 샤오친이고 싶지만 현실은 구자인’ 내가 보이기도 하고, 만니처럼 용기 있게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의 꿈을 중시하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지인들을 만나면 드라마 상황을 놓고 ‘너라면 어떻게 할래?’를 놓고 대화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유형에 대해 짚어 보기도 한다. ‘나는 직장에서는 만니인데, 남편 앞에선 샤오친’이라는 사람부터 ‘구자 같은 현명하고 도움 주는 아내가 되고 싶지만 철없고 상처 잘 받는 샤오친 같은 아내’라는 이 등등 다양하다.
유형에 이름을 붙여 봤다. ‘완성형’ 구자, ‘현재진행형’ 만니, ‘대기만성형’ 샤오친. 누가 맞다 틀리다의 문제도 아니고, 유형별로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있다.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얘기해 볼까.
# 완성형, 구자
유치원 입학을 앞둔 네 살 아들을 키우는 열혈 엄마이자 전업주부면서도 남편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하는 아내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성공만 좇지도 않는다.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넘치는 사랑을 베풀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명문대에 입학시키겠다고 온 가족의 인생이 들썩들썩했던 우리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서진(염정아 분)에 버금가는 노력으로 어린 아들을 명문 유치원에 입학시키려는 구자의 노력이 눈물겹다. 입학에 도움을 준 왕 여사를 ‘입장권’으로 해서 여사님들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폐쇄적 살롱 모임을 통해 유치원 입학도, 남편의 불꽃축제 회사 계약도 성사되자 모임에 대한 신뢰와 의존이 급격히 상승한다.
그 바람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모두가 만류하는 후난성의 차밭과 공장을 리 여사로부터 인수,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본다. 하지만 그 실수가 구자의 성공 강박증에 쉼표를 찍게 하고, 잘못 든 길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구자를 ‘완성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세 여성 중 가장 좋은 집에 살고, 눈물 나게 감동적인 서른 살 생일파티를 해주는 남편이 있고, 어린 왕자가 구자네 불시착한 듯 귀여운 아들이 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할 수 있는 재력과 세련된 패션 감각을 갖췄고, 부단한 운동과 저녁을 먹지 않는 생활습관으로 다져진 날씬한 몸매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틀린 답일 수 있어도 문제가 발생하고 위기에 닥쳤을 때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힘을 지녀서다. 인생에서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구자는 문제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편 쉬환산(리쩡평 분)의 직원들도, 친구들도 문제가 터지고 고민거리가 생기면 구자를 찾는다. 그들이 구자를 찾는 게 단순히 기능적으로 ‘유능’해서만도 아니다. 구자는 똑 부러지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배려가 깊고 넉넉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내 시간을 내고, 내 지갑을 열고, 내 마음을 쏟는다. 상대에게 필요한 걸 먼저 챙겨 베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자에게 그 상대는 홀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 남편과 아이, 절친 샤오친에 국한하지 않는다. 새로 사귄 친구 만니, 샤오친의 말썽꾼 시동생, 자신이 떠안게 된 차밭 마을의 촌장부터 소녀까지 ‘마음에 들인’ 모두다. 세 명의 주인공 중 가장 인격적으로 성숙했고 어른이다.
그런 구자에게도 치명적 단점이 있으니 남편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하는 것이다. 예술가적 꿈을 지닌 남편이 소년처럼 살게 두되 미리미리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 사장인 쉬환산에게 선을 넘어 충성하는 여자 직원을 미리 정리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의부증을 의심하게도 하는데, 부하 직원의 저의를 눈치채지 못하는 남편의 특성을 고려한 선제적 행동이다. 하지만, 경찰 열 명이 도둑 하나 못 잡는다고 아무리 ‘레이더’를 바짝 켜도 막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소년 같은 남편에게 엄마 같은 아내의 보살핌은 숨이 막힐 수 있다. 남편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제적으로 밑바탕을 깔아 준 뒤 자신은 가정으로 돌아가 나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인 것까지는 좋지만, 내 자유를 뺏는 건 싫을 수 있다.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반납한 구자라 하더라도 남편의 자유를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완성된 인격과 삶에 대한 성실을 갖추고도 그 이상의 ‘완벽’을 추구하다가 구자는 되레 역풍을 맞는다. 그러나, 구자다.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서도 구자는 다시 한번 모두에게 최선인 ‘대결단’을 내린다.
# 현재진행형, 만니
만니는 세 주인공 가운데 유일하게 미혼이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중국에서의 ‘서른’이라는 나이는 우리나라 30대 후반 같은 분위기로 그려진다. 명품매장의 실적 좋고 평가 좋은 직원이자 아름다운 만니를 두고도 모두가 결혼이 늦었다는 듯 ‘골드 미스’ 취급을 한다.
하지만 만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실은 명품매장 슈퍼바이저에 속해 있지만, 그의 당당한 태도와 삶의 패턴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높은 곳이라는 게 신분 상승이나 부자가 되는 일, 삶의 안정을 꾀하는 게 아니다. 만니는 언제나 꿈을 꾼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달린다.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니는 오늘을 산다.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사람을 선택한다.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삶의 태도다. 대단한 용기다. 20대 초반 작은 촌락을 떠나 대도시 상하이로 온 것도, 8년을 하루처럼 열심히 일해 차근차근 승진을 이뤄낸 것도, 자신의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다시 고향으로 간 것도, ‘왜 떠났던가’를 기억해 내고 자신의 결에 맞게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는 것도 용기의 산물이다. 상하이에 돌아와서도, 돌아올 때 목표로 했던 일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그 고생의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상기해내는 사람이다.
과정이 고생스러우면 그것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그것을 완수했을 때 완수 자체로 만족과 함께 긴장이 풀린다. 그래도 된다. 그런데 만니는 말했듯 보다 높은 곳을 보는 인물이다. 고단한 오늘을 버텨내는 와중에 가장 하고 싶은 일, 전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고생을 꿈꾼다. 그리고 실천한다. 흔하지 않은 대담한 선택과 굉장한 추진력은 ‘용기’에서 나온다. 상처받을까 멈추고, 고생스러울까 멈추고, 실패할까 두려워 멈추지 않는 용기가 만니에게 있다.
만니는 사랑 앞에서도 용감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헤어진 뒤 3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할 만큼 사랑한 사람이지만, 상하이 정착을 서로 도왔고 둘이 함께인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서로를 제자리에 붙들어 두는 발전적이지 못한 관계이기에 남자친구 장천(마오이 분)과 헤어졌다. 장천은 커피 맛이 좋은 카페 사장님이 됐고, 만니도 상하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 서로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장천은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지 않으려는 만니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식지 않은 우정을 보인다. 장천이 내미는 손길을 잡을 만도 하건만 만니는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똑같지 않은 마음으로 호의를 받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선을 긋는다. 삼각관계를 만들일 없는, 선 긋기의 달인이다.
잘 풀리지 않던 만니의 연애사에 서광이 비친다. 회사에서 보내준 크루즈여행에서 량정센(마지위 분)을 만난다.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부자여서 부담스러운 만니, 연락처 하나 주고받지 않고 크루즈를 내린다. 만니를 추적해 상하이 매장으로 찾아온 남자, 만니는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하고 량정센이 묵고 있는 호텔로 달려간다. 그것으로 연애 시작인가 했는데, 남자는 쉽사리 ‘연인’ ‘여자친구’로 관계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 만니는 단호하다. 분명치 않은 관계 속에서 쏟아붓는 물질적 호의를 거절한다. 결국 량정센은 두 사람의 사이를 ‘연인관계’로 공식화하지만, 여전히 남겨 두는 거리감. 불확실성의 원인에 대해 남자는 ‘비혼주의’를 말하고 만니의 연애는 다시금 어려움에 처하지만, 자신이 량정센을 좋아했던 건 돈이나 결혼할 수 있는 상대여서가 아니라 그 자체였음을 상기하며 ‘직진’한다. 그리고 그 ‘직진’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일이 발생하지만, 그 결과 또한 ‘쿨하게’ 받아들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람이 성숙해지면 좋은데, 현실은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많아진다. 하지만 만니는 세 주인공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찍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가장 용기 있는 선택으로 ‘비상한다’.
# 대기만성형, 샤오친
샤오친은 현실에 살아있는 ‘피터팬’이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영원히 몽상을 멈추지 않는 ‘게으른 철학자’이다. 샤오친은 계속 샤오친으로 산다. 자, 이제 내가 결혼했으니 천위(양러 분)의 아내로서 유부녀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며 일상을 바꾸지 않는다. 결혼했지만 여전히 친정 부모님의 손길로 요리 등의 가사를 해결한다. 나머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남편이 하고 있지만,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노고들이 일상이라는 바퀴를 굴리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기적이거나 못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천진난만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불만은 많다. 천위가 기본적으로 말수 적고 재미없고 차가운 사람인 데다 너무 많은 시간을 어항 속 물고기와 지낸다. 전화해도 잘 받지 않고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늦더라도 답을 주는 일도 드물다. 어느 부인이라도 화낼 만하고 분노가 쌓일 만하다. 문제는 샤오친은 그 누구보다 더 슬프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 분노는 샤오친이 천위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바가 부모님에게 버금가기 때문이다. 엄마가 깨끗이 치워 놓은 집에서 아빠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란 샤오친은 결혼해서도 그것이 유지되길 바란다, 거기에 자신의 수고 몫은 없다. 결혼 전후를 구분하지 못하는 ‘착각’ 하나가 샤오친 인생에 큰 폭탄을 터뜨린다.
폭탄은 기대하지 않은 핑크빛 뭉게구름을 피우지만, 구름은 바람이 불면 흩어진다. 내 마음도 잘 모르고, 거절도 할 줄 모르고, 매사 또렷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샤오친이 여러 사람 속을 상하게 하지만 가장 아픈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처음에 말했듯 샤오친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되레 샤오친은 천사처럼 착하다. 회사에서 모두가 싫어하는 잡일을 도맡아 하고, 이젠 너무 굳어져서 궂은일만 있으면 동료들이 샤오친을 찾는다.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는 것이라는 대전제가 몸에 밴 샤오친이 그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역할을 그렇게 익혔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고뭉치 시동생이 저지르는 일에도 형보다 더 내 일처럼 나선다.
앞뒤 현실분간은 잘하지 못해도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샤오친이기에, 남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는 그이기에 구자나 만니도 샤오친을 무척 아낀다. 친구들이 애정 어린 조언을 한다. 누구에게 기대려 하지 마라, 먼저 너 스스로 서라, 남보다 너부터 너를 사랑해라, 그래야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있다. 현명한 구자, 용기 있는 만니의 충고를 새겨듣고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한다. 스스로 꼿꼿이 서고 보니 되레 주변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게 부부의 공동생활사를 챙기고 있던 남편의 노고가 보이고 꽁꽁 얼었던 샤오친의 마음은 눈 녹듯 녹는다.
샤오친이 정말 대단한 것은 타인의 말에 귀가 열려 있다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면 깨끗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믿는 친구의 조언이어도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쉬운 우리다. 잘못을 인지하고도 인정보다는 자기변명의 구실 찾기에 바쁘다.
마음이 따뜻하고 남의 일이 내 일처럼 느껴지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 아직도 꿈꿀 줄 아는 샤오친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는다. 작가다. 일기처럼 내 얘기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주변을 넘어 우리의 얘기를 썼기에 드라마 ‘겨우, 서른’이 나왔을 것이다.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어리고 귀엽기만 했던 샤오친, 늦게 됐지만 크게 된다.
‘대기만성형’ 샤오친, 우리가 조급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은 어리숙하고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손해 보면서 살아도 된다는 걸 ‘게으른 철학자’ 샤오친이 보여준다. 이미 많은 것을 지니고도 ‘더 큰 안정’을 추구하다 빈손이 된 구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사람으로서 이미 ‘완성된’ 인격과 품을 지닌 구자니까 이제부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영국으로 날아간 만니(장수잉도 실제 영국 유학파)의 오늘도 응원한다. 만니는 오늘 배고파도 오늘 행복할 것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으니까.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