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이 땅의 모든 '미나리'를 위하여
입력 2021.03.04 01:00
수정 2021.03.04 04:04
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
오스카 주요 부문 후보작으로 예측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속 순자의 외침이 어느새 위로와 응원으로 느껴지는 영화다. '미나리' 이야기의 중심은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주한 한국인 가족이지만, 공감의 폭은 넓다. 정이삭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로 '미나리'를 구성했다. '미나리'는 실제 정이삭 감독의 할머니가 키웠던 식물이다. 어디서든 햇빛과 물을 머금고 잘 자라나는 '미나리'의 성장이 낯선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모두의 모습으로 비유했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는 아칸소로 이주하지만 서로 다른 꿈을 품고 있기에 자주 부딪친다. 보스턴에서 병아리 암수 감별사로 고생해 모은 돈을 농장에 쏟아붓는 제이콥이 모니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이콥은 모니카가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을 나가기 힘든 상황이 되자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과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순자의 등장과 동시에 '미나리'의 공기는 달라진다. 대화가 언제 싸움으로 번질지 모르던 제이콥의 집에 순자의 존재는 환기를 담당한다.
손자 데이빗(엘런 분)은 한국 냄새나는 할머니가 낯설다. 쿠키도 구워주지 않고 남자 팬티만 입고 지내는 모습이 도통 자신이 알고 있던 할머니란 이미지와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빗은 곧 할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할머니의 냄새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제이콥의 농장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모니카와의 갈등은 다시 불이 붙고, 이혼의 위기까지 직면한다. 하지만 부부는, 순자로 인해 번지는 하나의 사건 앞에서 본능적으로 손을 잡게 된다.
'미나리'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세월을 떠오르게 만든다. 제이콥이 아칸소로 이주한 것도, 모니카가 그런 제이콥을 마뜩지 않아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다. 더 나아가 순자는 낯선 나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딸 모니카를 위해 장시간 비행을 견디고 날아온다. 순자는 영화 내내 제이콥의 셔츠나 모니카의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짐을 줄이고 딸 가족을 위한 음식들로, 가방 안을 가득 채워온 마음 때문이다.
모니카가 데이빗의 성장에 먹먹해하고 감동하듯, 아이 엄마가 된 딸을 바라보는 순자의 눈도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순자는 부딪치고 실패해도 꼿꼿하게 낯선 땅에 서 있으려는 모니카를 자신의 방법대로 응원한다.
또한 농장을 시작하며 자연을 대하는 제이콥과 순자의 대조적인 태도도 흥미롭다. 제이콥은 물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땅을 파내며 자신의 방법대로 자연을 운용하려 했지만, 순자는 자신이 자연을 찾아다니며 미나리를 심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은 순자가 심은 미나리를 바라보며 그의 지혜를 깨닫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미나리'는 큰 사건이나 반전은 없지만 가족이 크고 작은 갈등을 통해 어떻게 보듬는지 그리며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제 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과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 세계 75관왕을 기록하며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는 '미나리'가 국내 관객들까지 보듬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3일 개봉.러닝타임 1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