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한국어'로 승부 건 '미나리'에 거는 기대와 부담
입력 2021.03.03 01:00
수정 2021.03.03 13:53
미나리 78회 골든글로브 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
수상 결과에 인종차별 논란 확산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 지명에 기대
‘미나리’ 정이삭 감독은 제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자, 어린 딸을 품에 안으며 “딸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 이주민의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의 수상 소식에 한국 영화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미나리’의 수상은 특별한 상황을 만들었다. 1980년 미국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이민 1세대를 그린 미국 영화지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매체들이 이 상황에 대해 골든글로브 측을 비판했다. 언어로 수상 부문이 규정됐지만, ‘미나리’는 가족의 중요성과 낯선 곳에서 뿌리내리려 하는 이들의 애환을 ‘공감’이라는 언어로 보여줬다.
골든글로브 이후 많은 이들은 ‘미나리’를 아카데미에 있었던 ‘기생충’의 자리로 옮기려 하며,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한 시선이다.
◆ "진심의 언어" 인종차별 논란 확산
'미나리'의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영광과 함께 미국영화와 그 외의 영화를 영어란 언어로 규정짓는 안일한 잣대의 그림자도 따라왔다.
골든글로브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지명했을 때부터 인종차별로 지적을 받았다.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과 주연 스티븐 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하고 '문라이트', '룸', '레이디 버드', '더 랍스터' 등에 참여한 배급사 A24의 만남에도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가 50%이상 영어로 진행되지 않는 다는 점이, '미나리'를 '그들만의 리그'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정이삭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딸이 이 여 영화를 만든 이유다. '미나리'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단지 미국의 언어나 그 어떠한 외국어보다 깊은 진심의 언어(Language of Heart)다. 저 스스로도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물려주려고 합니다. 서로가 이 사랑의 언어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고 앞서 불거진 차별 논란을 의식한 듯 에둘러 말했다.
CNN은 골든글로브 수상 결과에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미국은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수상까지 마무리된 골든글로브의 결과를 뒤집을 순 없다. 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이 쌓여 시대착오적인 결정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영화제를 긍정적인 흐름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봐진다.
▲ 아카데미 行…희망이 보인다.
'미나리'가 국적 논란 속에 최우수외국어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자, 4월 열리는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지명 가능성도 높아졌다. 골든골로브 수상이 아카데미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 '아카데미 전초전'이라고 불려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골든글로브가 외국어영화상으로 분류해 시대착오적이며, 인종차별이란 비판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비평가협회 및 시상식에서 호평받으며 상을 휩쓴 '미나리'를 주요 후보로 지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순자 역의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후보를 넘어 수상까지 유력하다고 언급되고 있다. 윤여정은 미국 비평가 협회 및 시상식에서 연기상 26관왕을 받았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될 경우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배우상 후보에 오르는 일은 최초가 된다.
등장인물 중 한국의 시공간을 상징하는 순자 캐릭터가 미국에서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이삭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주제의식을 윤여정이 정확하게 꿰뚫어 연기했기 때문이다.
화투를 치고, 남자 팬티를 입고, 쿠키를 굽지 않는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외치는 데이빗(엘런 김)이지만, 이내 순자와 같이 화투를 치고, 집을 떠나려는 순자를 붙잡는 모습이 이민자를 한정한 것이 아닌, 전 세계인이 느끼는 가족의 보편적 감정이란 것을 정이삭 감독과 윤여정이 순자 캐릭터로 입증했다.
윤여정 외에도 스티븐 연의 남우주연상, 한예리의 여우주연상 후보 지명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
◆ 과열된 관심 '제2의 기생충' 수식어는 오히려 독
'미나리'는 미국 권위있는 시상식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기생충'과는 전혀 다른 결의 영화다. '기생충'은 100% 우리나라 제작진들과 자본으로 만들엊인 영화다. 지난해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관왕에 올랐던 결과를 이번에도 기대하는 수식어겠으나, 영화의 내용,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 무엇보다 우리나라 영화가 아닌 미국 영화라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배우들도 '제2의 기생충'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한예리는 "한국에서 자꾸 제2의 기생충이라고 하고, 이 영화가 상을 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 관객과 한국 관객의 감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대감에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통의 부재로 잘못된 정보가 배포되기도 했다.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1차 후보에 이름을 올린 '미나리'의 OST '레인 송'(Rain song)은 한예리가 가창하고 작사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예리는 인터뷰를 통해 '레인 송' 작사에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