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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회장 취임 100일…'100년 대계' 밑그림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1.01.18 11:10
수정 2021.01.18 12:43

취임 직후 고객중심, 수소사업 확대, 로보틱스·UAM 등 미래기술 현실화 '쾌속 행보'

지배구조 개편, 노사갈등, 중고차 시장 진출, GBC 사업 마무리 등 과제도 산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오는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불과 3개월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 회장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각종 현안들을 처리함과 동시에 그룹의 지속성장을 담보할 신사업 추진에도 속도를 내며 100년 대계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은 취임일인 지난해 10월 14일 전세계 임직원들에게 송출한 메시지에서 ▲고객 중심 ▲수소연료전지 기술 적용 분야 확대 ▲로보틱스, UAM, 스마트시티 등 미래 기술의 현실화를 경영 목표로 제시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같은 포부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정 회장은 뜸을 들이지 않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정 회장은 취임 직후 현대·기아차를 향한 고객들의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자 회사의 리스크 요인이었던 세타2 엔진 결함 문제부터 손을 댔다. 도합 3조4000억원의 충당금을 반영해 기존 세타2 엔진 평생보증 충당금 부족부분을 반영하는 한편, 세타2 MPI·HEV, 감마, 누우 등 다른 엔진에 대해서도 KSDS(엔진 진동감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장착 비용을 마련했다.


“항상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는 다짐을 실천한 것이다.


3조4000억원에 달하는 품질 관련 비용은 당장 현대·기아차 실적에 큰 타격이 됐지만 장기적으로 고객 신뢰 회복과 브랜드 가치 제고, 리스크 요인 제거라는 측면에서 결코 아깝지 않은 지출이라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수소연료전지 기술 적용 분야 확대를 통한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15일 첫 대외 일정으로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한 정 회장은 정부 및 관련 기업들과 ‘상용차용 수소충전소 구축·운영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오는 2월 출범 예정인 특수목적법인 ‘코하이젠’은 올해부터 10개의 기체 방식 상용차 수소 충전소를 설치할 예정이며, 오는 2023년에는 액화 수소 방식의 수소 충전소 25개 이상을 추가로 설치해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수소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예정이다.


정의선 신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해 정세균 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 회장은 당시 수소경제위원회 회의에서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이 적용된 수소 상용차 개발 및 보급을 통해 2030년까지 국내 시장에서 2만2000대, 북미 시장에서 1만2000대, 중국 시장에서 2만7000대 등을 판매해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 8만 대 이상의 수소 상용차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의 글로벌 종합화학기업 이네오스그룹(INEOS)과 글로벌 수소 생태계 확산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수소 생산, 공급, 저장은 물론 수소전기차 개발, 연료전지시스템 활용에 이르는 통합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수소 관련 공공 및 민간분야 사업 확대를 도모하기로 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LS일렉트릭과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 개발 및 공급 관련 상호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하고, 이달에는 중국 광저우개발구 정부와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판매법인 설립을 위한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소생태계 확산을 위한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왔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 행보는 더욱 신속하면서도 과감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등 계열사 지분투자는 물론 정의선 회장도 사재로 20%의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합의는 그룹 차원의 로봇 중심 밸류체인(가치사슬) 구축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육성하려는 각 기업과 그룹의 의지가 반영됐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포함한 그룹 차원의 로보틱스 역량, 제조 역량, 물류 역량 등이 시너지를 낼 경우 현대차그룹은 향후 급격한 성장세가 예상되는 로봇 시장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로봇 시장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32%의 성장을 기록해 1772억 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유망 분야다. 업계에서는 정 회정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결정이 과거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에 비견될 만한 ‘퀀텀점프’의 발판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정 회장이 직접 사재를 동원해 높은 지분율을 확보한 만큼 향후 로보틱스 사업이 그룹의 주력 중 하나로 부상될 경우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열린 2020년 신년회에서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신년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 회장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 의지는 취임 후 2개월 만에 단행한 그룹 연말 임원 인사에서도 드러났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을 총괄하는 신재원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UAM 개발 및 사업 가속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수소연료전지사업을 이끄는 김세훈 연료전지사업부장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수소전기차를 비롯한 수소사업 확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밖에 현대차 로봇 개발을 주도하는 현동진 로보틱스랩 실장을 신규 임원에 선임하는 등 당시 인사에서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30%가량을 미래 신사업·신기술 연구개발 부문에서 단행했다.


이달 기아가 로고와 브랜드명을 바꾸고 새 출발을 선언한 것도 정 회장 체제 하에서 이뤄진 큰 변화다. 정 회장이 지난 2005년 ‘사장’ 직함을 달고 경영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던 기아차가 ‘자동차’를 뗀 ‘기아’로 새출발하며 혁신적인 모빌리티 제품 및 서비스 기업으로 재도약에 나서게 된 것이다.


기아는 이번 로고 및 브랜드 교체를 통해 ‘둥근 테두리 로고’에서 벗어나며 현대차와의 통일성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브랜드파워를 끌어올릴 기반을 마련했으며, 제품 포트폴리오에서는 전기차와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에 주력해 미래 모빌리티 환경 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조감도.ⓒ현대자동차그룹

물론 정 회장의 앞에 탄탄대로만 놓인 것은 아니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지난 2018년 시도했다 무산된 지배구조 개편 문제을 조만간 풀어야 한다. 이미 한 차례 시장의 반대를 겪은 만큼, 앞으로는 투자자들도 만족시키면서 안정적으로 그룹 지배권을 확보할 획기적인 해법을 내놔야 한다.


국내 최대 강성노조로 꼽히는 금속노조의 주력 사업장들이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에 포진해 있어 앞으로도 경직된 노사관계는 정 회장에게 많은 어려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체제의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력 수요 감소 등의 문제에서도 진통이 불가피하다.


완성차 잔존가치 제고 및 신사업모델 확보를 위해 필요한 중고차 시장 진출 과정에서 발생할 기존 중고차 사업자들과의 갈등도 정 회장에겐 어려운 난제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대한 찬성 여론이 우세하지만, 기존 영세 사업들과의 상생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 사업도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익성 악화 및 미래 모빌리티 사업 투자금 소요로 GBC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이 약화된 가운데, 기존 105층 대신 70층 2~3개동, 50개층 3개동 등 설계 변경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2018년 수석부회장에 오른 뒤부터 실질적으로 그룹의 경영 전반을 총괄해왔던 만큼 회장 취임 이후에도 큰 혼란 없이 오히려 더 신속하고 과감하게 주요 현안들에 대응하며 그룹의 미래를 내다본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서 “앞으로 남은 과제들이 만만치 않지만 원만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을 시장에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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