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청와대로 향하는 윤석열의 '법치주의' 칼날
입력 2021.01.17 09:30
수정 2021.01.17 09:10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태 일파만파
이광철·이용구·박상기·이종근 등 개입 정황
윤석열 재배당 승부수…수사팀 보강해 박차
'권력수사' 경험있는 이정섭·임세진 전진배치
법무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수원지검 본청으로 사건을 전격 재배당했다. 대검 형사부에서 맡고 있던 수사지휘는 반부패강력부로 바꿨다.
윤 총장의 수사의지에 따라 수원지검은 부장검사 2명과 평검사 5명을 투입해 수사에 나선다. 이정섭 형사3부장은 지난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관련 조국 전 민정수석 등을 수사했으며, 임세진 평택지청 부장검사는 손혜원 전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의혹'을 수사해 유죄를 받아낸 검사다.
수사팀을 대대적으로 보강한 데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권력이 개입한 정황과 무관치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된 106쪽짜리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은 김 전 차관의 개인정보를 무려 177회나 무단 조회했으며, 법무부 직원들은 긴급 출금요청이 있기도 전에 공항에 도착한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제지하고 나섰다. '윗선'의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이 과정에 정권의 핵심실세들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인한 정황이 나오며 모든 심증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가짜 내사번호를 사유로 출금 승인요청서를 작성한 이규원 검사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사법연구원 동기이며 함께 법무법인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이 검사의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에 이 비서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제기한 바 있다.
김 전 차관의 출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용구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현 법무부 차관)이다. 이는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증언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김 전 차관 수사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수행한 공로로 법무부 차관까지 승승장구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이 차관은 '아이디어만 제시했을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정책보좌관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 전 차관 출금 조치 후 약 12시간 뒤 박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이 출입국본부를 직접 방문했는데, 사건 관련 '대응법' 등을 출입국 직원들에게 지시한 사실이 법무부 직원들의 단체 카톡방 대화에서 확인된다. 당시 정책보좌관이 이종근 현 대검 형사부장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남편이다.
"출금은 장관 직권" 불법 아니라는 추미애
법조계 "괴상한 논리로 명백한 불법사실 호도"
文 정권 '권력 사유화'에 정치적 파장 불가피
법무부는 출금은 장관의 직권이고, 또한 사건번호 부여는 검사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가짜 내사번호 등을 부여한 것은 급박한 사정에 비춰 '사소한 흠결'이라는 식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직자의 중대한 범죄혐의로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던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이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상당히 우려되었던 상황"이라며 "검사는 단독제 행정 관청으로 출금요청을 할 수 있는 수사기관이고 장관이 직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수사기관 요청에 근거해 출금조치했다고 해도 부적법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아무리 중대한 범죄자라고 해도 공권력의 집행은 법에 따라 엄격히 이뤄져야 하는 게 '법치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설사 장관의 직권으로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자행된 집행 과정의 불법을 치유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통화에서 "법무부 장관에게 권한이 있더라도 법과 시행령에 명시된 요건에 따라 엄격히 이뤄져야 하며, 이번 사건은 이론의 여지없이 명백한 불법"이라며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우니 법무부와 추 장관이 별별 괴상한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정권 핵심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됐을 뿐만 아니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문재인 정권 내에서 '사유화된 권력'의 모습을 국민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앞서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밀어붙이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 전 차관을 엄벌하라는 대통령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 공식 정보망에 불법으로 들락거리면서 형사 피의자도 아닌 한 개인을 마구잡이로 불법 시찰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하느냐"며 "선출된 권력,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대통령 주변의 오만한 발언들이 문 대통령이 은밀하게 저질러온 많은 불법과 탈법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