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단계적 접근' 필요성, 미국서 왜 제기되나
입력 2020.12.13 06:00
수정 2020.12.12 20:53
北 비핵화 가능성 없다고 보고
위협 감소 차원서 단계적 접근 필요성 대두
"北의 인도·파키스탄化 우려 낳을 수도"
미국 신행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단계적 접근'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단계적 접근이란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스몰딜'을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비핵화 진전과 일부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북미 간 '중간단계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괄타결 방식으로 평가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과는 정반대 접근인 셈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단계적 접근 가능성에 반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내세운 '핵동결 입구, 비핵화 출구' 전략과 단계적 접근 간 '교집합'이 적잖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TV토론 과정에서 '북한이 핵 능력을 줄인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며 "비핵화와 관련해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단계적으로 이행하자'는 우리의 접근 전략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워싱턴에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이 거론되는 배경을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확고한 불신'이 자리 잡은 영향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미 싱크탱크 국익연구소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담당 국장은 "분명한 것은 중단기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30년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실이 없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가깝게는 물론 먼 미래에도 북한은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윤 전 대표는 "미국 행정부 입장에선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며 "분석가와 정책 입안자에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협을 감소(threat reduction)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미 외교 당국이 '목표 포기'를 공식 선언하긴 어려운 만큼 대안으로 위협 감소, 즉 단계적 접근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대두된 단계적 비핵화론은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현 수준의 위협을 낮추는 '불가피한 차선책' 성격을 띤다.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워싱턴 전문가들처럼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계적 접근을 추진할 경우, 북핵과 관련한 한국의 안보 불안이 좀처럼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 불가능한 목표로 간주하고 있다면, '미국에 대한 위협 감소'라는 단기적이고 달성하기 쉬운 목표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워싱턴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할 것이다'고 보는 분위기가 프리징(동결)과 같은 '중간단계 합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미국이 자신들을 향한 위협만 제거하며 북한을 파키스탄과 인도처럼 만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한국 내 반론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탕으로 '비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명확한 비핵화 로드맵 없이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하진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김영호 국방대학교 교수는 향후 대북협상을 책임질 가능성이 높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지명자의 과거 언론 기고문을 언급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비핵화 핵심 사안으로 핵미사일 '신고'를 내세울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신고란 북한이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다 보겠다는 것"이라며 "'목표'를 분명하지 않으면 (북한을) 못 믿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