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라임 분쟁조정 속도…은행제재는 템포 조절
입력 2020.12.08 14:08
수정 2020.12.08 14:09
금감원 손해 미확정 라임펀드 분쟁조쟁 다음달까지 마무리
은행제재 '연말→연초 착수' 늦춰져…'先조정 後제재' 방향
금융당국이 손해가 확정되지 않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분쟁조정 작업에 속도를 내는 반면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 대한 제재는 내년으로 넘기며 '선(先)분쟁조정 후(後)제재'로 가닥을 잡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KB증권과 우리은행의 사모펀드 피해 고객을 대상으로 한 분쟁조정을 다음달까지 마무리한다. 이미 분쟁조정을 위한 3자(금감원‧판매사‧투자자) 면담 등 현장조사는 마친 상황이다.
금감원은 판매사의 배상 책임 여부와 배상 비율 등과 관련한 내·외부 법률 자문 작업 등을 거쳐 분쟁조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법률 검토가 끝나고 쟁점이 없다면 연내 분쟁 조정을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분쟁조정은 손해액이 확정된 후 시작됐지만, 손실 규모가 확정되기까지 수년씩 걸려 소비자 피해 구제가 늦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후정산 방식의 분쟁조정을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이 있는 펀드에 적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권에선 환매 중단을 일으킨 주요 사모펀드의 손해액과 회수율은 물론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보상 책임을 판매사에게만 지우는 것은 투자에 따른 모럴헤저드를 양산하고 시장질서 자체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시장의 우려를 뒤로하고 사모펀드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정 손해액을 기준으로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배상한 뒤 최종 손실 확정액에 따라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추정 손해액을 바탕으로 분쟁 조정하는 방안의 첫 대상은 KB증권이 판매한 '라임 AI스타 1.5Y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1∼3호'와 우리은행이 판매한 '라임 플루토 FI·라임 테티스 2호'다.
금감원은 법원의 재판상 화해 절차를 통해 라임펀드 피해자에 40∼80%를 배상한 산업은행의 해결 방식을 참고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 조정에 따른 법원 판단의 하한선인 40%를 마지노선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펀드사태 최소화 위한 '先배상 속도전'…제재일정은 줄줄이 밀려
반면 연내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 라임사태 관련 은행 제재는 내년 초에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최대 관심인 은행권 제재를 앞두고 정치‧사회적으로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은행권에 대한 연내 제재착수를 공언했던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은행 제재는 내년 2월쯤 들어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은행에 대한 검사 등이 지연되면서 제재 시간표도 늦춰졌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통상 금감원은 제재심에 앞서 대상 기관에 사전통지서를 보내는데 아직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 가운데 통지서를 받은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별 라임펀드 판매액은 우리은행 3577억원, 신한은행 2769억원, 하나은행 871억원, 부산은행 527억원, 경남은행 276억원, 농협은행 89억원, 산업은행 37억원 등이다.
증권사에 대한 제재 결과도 해를 넘겨 나올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9일 정례회의에서 라임 펀드 판매 증권사에 대한 과태료 수위를 결정하면, 이후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전·현직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와 기관 제재 안건을 일괄 처리하게 된다.
오는 16일에 올해 마지막 금융위 정례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최종 결론을 내긴 쉽지 않다. 금융위 정례회의는 연말에는 축소 운영되는데다 처리해야할 사안도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증권사에 대한 최종 제재는 물리적으로 해를 넘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내 계획이 잡힌 금융사에 대한 종합검사 일정도 줄줄이 내년으로 밀렸다. 사모펀드 사태에 검사에 적지 않은 인력이 투입된 데다 코로나19로 검사 진행에도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금융당국 일련의 과정을 두고 펀드사태에 따른 부실 관리‧감독 책임론을 면하기 위한 전략적 일정 진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사에 백기투항 시간을 주는 것"이라며 "가능한 빨리 투자자들과 사적 화해에 나서라는 압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