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근미의 모난돌] 최고금리 인하, '무조건 직진'만이 정답일까
입력 2020.11.09 08:00
수정 2020.11.09 08:05
정부·여야 정치권, 최고금리 인하 한 목소리…24%→20% 인하 가닥
금리 인하에 대부업 위축-사금융 활개…부작용·보완책부터 살펴야
법정최고금리 인하 이슈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위원회에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의 영향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시작으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은성수 금융위원장 등 당국자들이 잇따라 한 목소리를 내면서 최고금리 인하 관철에 힘을 싣고 있는 양상이다.
최고금리 인하 움직임은 지난 2018년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연 27.9%에서 24%로 낮춘 지 2년 만으로, 문 대통령의 취임 초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핵심공약이기도 하다. 현재 연 24% 수준인 최고금리를 20% 안팎으로 인하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야 역시 이 이슈에서만큼은 이견이 없어 정부가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낼 개연성 또한 커졌다.
최고금리가 연 20%로 낮아진다는 것은 시중은행이나 카드사, 저축은행, 캐피탈, 대부업체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출 취급 시 받을 수 있는 최대 이자율을 연 20%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생각하면 자금 융통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의 고금리 이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보다 좋은 정책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를 실행해야 한 금융권에서는 손사레를 치고 있다. 이는 과연 서민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욕심인 걸까.
문제는 금리인하 정책이 미치는 여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권 내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과 전문가들은 최고금리 인하로 기존 대부업체를 이용하던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시중은행 이용이 가능한 일부 고신용자들에게는 금리 인하 등 일정부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보다 여력이 없는 소외계층의 대출 문턱은 되려 높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대부업·사금융시장 이용자 및 업계동향 조사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최고금리가 인하된 2018년 전후로 대부업체 평균 대출승인율은 2017년 16.1%에서 2019년 11.8%까지 내려갔다. 고금리임에도 자금 융통이 절실해 ‘제도권금융 최후 보루’로 꼽히는 대부업체 문턱을 두드렸지만 정작 이곳에서조차 대출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금리 인하에 따른 여파는 대부업권 자체도 위축시키고 있다. 실제 대부업계 1위와 5위 업체인 산와머니와 조이크레딧은 지난해 3월과 올해 1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금융기관은 신용도가 낮은 차주에 대해서는 상환능력에 대한 리스크를 감안해 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매기는데, 금리 상한을 낮출 경우 그만큼 대부업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차주 범위가 좁아지게 된다. 결국 차주들은 금융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불법사금융(사채)으로 진입할 여지가 커진다. 이들은 당국 관리 범주에서도 벗어나 있다 보니 불법 고금리 및 추심행위에도 노출되기 십상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여신금융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2010년 최고금리를 연 29.2%에서 연 20%로 인하한 후 9년 간 대부업체가 73.3% 급감했다. 대신 불법사금융 이용률이 1.2%에서 8.8%로 늘어나는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금리책정 합리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금리인하 정책으로 불법사금융 이용이 늘어나는 부작용까지도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리적 금리가 형성되는 환경을 선제적으로 조성하고 최고금리 인하 충격을 완화할 서민금융대책 마련도 함께 진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 먼저다. 정책 실패에 따른 저신용서민들의 충격은 고신용차주들의 것보다 파장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사뭇 신중해야 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단순 수치상의 금리 인하에 앞서 정부의 신중한 정책 추진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