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외풍에 시달린 금융권…더 강력하게 부활한 '관피아'
입력 2020.11.03 06:00
수정 2020.11.03 15:53
금융권협회장 관료출신 일색…"세월호사태 후 民출신 흐름서 후퇴"
거래소장 손보협회장으로 직행…업계 "외압 막아줄 협회장 필요해"
금융협회장 차기 인선을 앞두고 '관피아'(관료+마피아 합성어) 바람이 거세다. 금융권에선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 근절에 나서며 민간협회장이 상당 부분 업계 몫이 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기류에서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손해보험협회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을 받아 사실상 내정됐다. 인선 과정에서 연임이 유력했던 김용덕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후배 관료'에게 자리를 넘겨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 이사장은 행정고시(27회) 출신으로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을 거쳐 2014년에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김용덕 현 회장도 행정고시(15회)로 공직을 시작해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과 국제업무정책관, 건설교통부 차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 10년 간 손보협회 회장 자리는 세월호 사태로 관피아 근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2014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관료 출신이 차지했다. 금융권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관피아 돌려막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다음달까지 협회장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권 3대 협회장(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도 대부분 관피아로 채워졌다. 최대 관심인 은행연합회장 자리의 경우 거론되는 유력 후보가 모두 관료 출신이다.
현재 최종구·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출신인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이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김태영 현 회장과 전임자였던 하영구 전 회장이 민간 출신이었지만, 이젠 '어떤 전직 관료를 택하느냐'는 고민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사와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업계에선 2일 이임식을 가진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조만간 자리를 옮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손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공적 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속내를 숨기지 않았고, 아예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환송사에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있다. 손 부위원장이 당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업계 출신 협회장' 추세에 역행…"노골적인 관피아 돌려막기" 비판
그동안 정권이 금융권 민간 협회장까지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관피아 논란'과 함께 점차 자제하는 추세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만 해도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장남식 전 손해보험협회장 등이 모두 업계 출신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낙하산 인사와 함께 협회장에도 관피아가 자리하는 퇴행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권에선 거세진 당국 규제와 정치외풍 앞에 업계를 보호해줄 '고위당국자 같은 협회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과도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협회장에 관료 출신이 관행처럼 자리하는 데에는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상 업계의 '바람막이'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적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와 정치권의 외압을 견디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힘이 있는 전직 관료들이 필요하고 협회에서도 이들에게 손짓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이번 협회장 인사가 유독 '퍼즐맞추기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직 금융수장들이 동시에 협회장이 되는 상황은 과거에도 없었던 일"이라며 "현직 협회장이 다른 협회장으로 수평이동하는 돌려막기 인사가 어디있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협회 회의에 가면 현직 금융당국자들이 '장관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