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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⑮] 한국의 헬레나 본햄 카터, ‘담보’ 김재화의 이 영화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0.10.25 10:56 수정 2020.10.25 10:56

배우 김재화 ⓒ 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배우 김재화 ⓒ 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돈을 꾸어와서 갚지 않은 것도 아닌데 빚진 느낌의 배우들이 있다.


일테면 과거 유해진이 그랬다. 여러 영화에서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한 작품을 충분히 끌고 갈 힘을 가진 배우인데 조연에 머무르는 게 내가 미안했다. 그러다 멀티캐스팅이나 투톱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유해진 덕에 올라간 관객 수가 꽤 많음에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느낌에 아쉬웠다. 그러다 단독 주연, 그야말로 원맨쇼 영화 ‘럭키’(2016)가 개봉하는데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이 들었다, 별 힘도 없으면서.


주변에 “우리가 그동안 좋은 연기 봤던 값을 좀 치르자, 영화 좀 많이 보자”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웬걸, 다 같은 마음이었고 ‘되겠구나’ 안심했다. 반신반의하는 동료에게 주변 민심에 기대어 마치 예언가라도 된 양 “흥행할 거야!” 장담하기도 했다. 민심은 천심, ‘럭키’는 697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제목에 딱 맞게 700만으로 기록되게 3만 관객을 끌어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충분히 배우 유해진의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그다음부터는 순풍에 돛 단 듯, 스스로 지닌 실력과 멈추지 않는 아이디어로 촬영현장을 즐겁게 하고 작품에 공을 보태며 순항하고 있다.


중국 선수 덩아령으로 분한 김재화 ⓒ 영화 '코리아' 스틸컷 중국 선수 덩아령으로 분한 김재화 ⓒ 영화 '코리아' 스틸컷

비슷한 마음이 드는 배우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김재화다. 영화 ‘황해’에서 살짝, ‘카운트다운’에서 살짝, ‘러브픽션’에서 잠깐 보면서도 눈길이 갔다. 궁금증이랄까 갈증이 처음 해소된 영화는 ‘코리아’였다. 중국 국가대표 탁구선수, 세계 1위 자리를 다투는 덩아령 역을 맡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어찌나 제대로 준비했는지 ‘현실의 중국 탁구선수’를 캐스팅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소가 ‘중국 배우’였다. 개인적으로 ‘쾌감’이 일었다. 역시! 대단한 배우구나! 아무에게 말하지 못해도, 눈여겨봤던 배우가 실력 발휘를 충분히 할 기회를 얻거나 잘나가면, 내가 캐스팅하고 내가 키운 것마냥 기쁜 게 기자라는 직업의 우스운 일면이다. 그런 애정과 관심이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는 직업을 견디게 한다.


사실, ‘코리아’ 이후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너무 중국인 같아서였을까, 그 대단한 열연 후에도 아직 조연이다. 출연 비중이 작을 뿐 작은 배역은 없고, 더더군다나 작은 배우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빚진’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 뒤 여러 영화, 드라마, 시트콤에서 어떠한 캐릭터가 맡겨져도 원래 그 인물이었던 것처럼 잠깐이어도 소름 돋는 연기를 선물해 주기에 빚덩이가 커가는 느낌이다.


승무원 역의 배우 김재화, 고성희, 김예랑(오른쪽부터) ⓒ 영화 '롤러코스터' 스틸컷 승무원 역의 배우 김재화, 고성희, 김예랑(오른쪽부터) ⓒ 영화 '롤러코스터' 스틸컷

일테면, 영화 ‘롤러코스터’의 승무원 김활란의 속사포 수다는 언제 들어도 내가 옆에서 꽹과리라도 치고 있는 듯 신이 나고, 나도 정신 바짝 들게 영화 ‘소공녀’의 정미가 미소에게 던진 인생 직구를 맞고 싶고, 드라마 ‘시크릿 마더’에서 서릿발 같은 불호령을 내리다가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내 명화숙이 내 가족이면 좋겠고, 길 가다가 우연히라도 절대 스치고 싶지 않은 섬뜩함이지만 어떤 미스터리 공포영화의 캐릭터보다 살기 넘치는 ‘우상’의 수련이 주인공이 된 영화를 보고 싶다.


사진만 봐도 살아오는 공포감 ⓒ 영화 '우상' 스틸컷 사진만 봐도 살아오는 공포감 ⓒ 영화 '우상' 스틸컷

개봉 중인 영화 ‘담보’의 정 마담은 또 어떤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저 자신의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정 마담일 뿐이지만 담보, 어린 승이(박소이 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의 벽이고 박두석(성동일 분)에게는 승이를 구출해 내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하는 빌런(악당)이다. 승이와 두석의 비극이 커 보이려면 선명한 악이어야 하지만, 그렇게 평면적으로 연기하면 영화가 우스워진다. 또 정 마담 역시 우리네 이웃 중 한 인물일 뿐이다. 그런 미묘한 지점을 배우 김재화는 탁월하게 연기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서 매번 새로운 인물을 우리 눈앞에 데려오고, 분장이든 의상이든 아름답고 흉측하고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위해서라면 변화를 넘어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 김재화를 보노라면 세계적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가 생각난다. 세월의 흐름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젊음을 줄 광대뼈까지 똑 닮았다. 연출가 남편을 선택한 것도 같다. 배우 김재화 역시 헬레나 본햄 카터처럼 더욱 다양하게 쓰임 받으며 더욱 큰 사랑을 받게 되리라 믿는다.


어쩌면 나일지 모르는 내면을 연기하는 배우 김재화 ⓒ 영화 '다운' 스틸컷 어쩌면 나일지 모르는 내면을 연기하는 배우 김재화 ⓒ 영화 '다운' 스틸컷

빚을 단단히 졌나 보다. ‘올드무비’ 코너인데, 아직 제목도 말하지 않았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다운’이다. 2018년 작이니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김재화 배우가 주연인 영화여서, 또 30분 채 안 되는 짧은 영화이지만 김 배우의 감정선 조절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리얼 일상연기를 감상하기에 충분해서 추천한다. 다른 얘기를 오래 한 이유는 또 있다. 영화 ‘다운’은 제목의 뜻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절대 검색하지 말고 그냥 보는 게 제격이기 때문이다.


너무 심한가^^. 세 가지만 알고 보면 된다. 첫째, 배우 김재화 주연이다. 둘째, 연기 잘하는 ‘완벽한 타인’ ‘내 안의 그놈’ ‘정직한 후보’의 윤경호 배우가 남편 역이다. 셋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마음 따뜻한 당신에게 눈물주의보를 발령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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