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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 함정' 빠진 한국 경제…금리 동결 장기화 모드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10.15 06:00
수정 2020.10.14 14:16

의문부호 커지는 통화정책…유동성 늘려도 부동산·주식만 들썩

선택지 사라지는 한은…"코로나19 끝나도 저금리 계속" 관측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이 장기화 모드로 진입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제로금리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추가적인 금리 조정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게 되는 제로금리 함정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지금의 저금리 기조가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한은에 따르면 전날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0.50%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7월과 8월에 이은 세 번째 동결 결정이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수준을 이어가게 됐다. 한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이 같은 초저금리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경기 부양 조치였다. 코로나19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추락할 것으로 관측되자, 금리를 내려 시장에 좀 더 많은 돈이 돌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월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기존 -0.2%로 예상했던 경제성장률을 -1.3%까지 하향 조정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건 외환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1998년(-5.1%)이 마지막이었다.


문제는 제로금리 이후 의도대로 시중의 유동성은 풍부해졌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7월 원계열·평잔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094조2784억원으로 지난해 말(2912조4341억원)보다 6.2%(181조8443억원)나 증가했다. M2는 현금을 비롯해 요구불예금과 머니마켓펀드,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과 금융채 등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이처럼 국내 통화량이 3000조원을 넘어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러나 정작 돈길은 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M2를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는 올해 상반기 말 14.85배로 역대 최저 기록을 다시 썼다. 통화승수는 은행들의 신용 창출을 통해 얼마만큼의 통화를 공급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돈의 활동 속도를 보여준다. 또 통화유통속도 역시 올해 상반기 동안 0.67에서 0.62로 떨어졌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단위 통화가 거래에 사용된 횟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명목 국내총생산을 M2로 나눠 계산한다.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과 증시만 과열시키는 형국이다. 기준금리가 급락한 이후 빠르게 확대된 시중 통화량이 민간 소비나 기업의 유동성을 개선시키기 보다는 부동산과 증시로만 쏠리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기대했던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은 총재는 "3분기 연속 가계부채 증가율이 높아지고, 특히 6월 이후 주택 거래나 주식 투자 자금 수요가 늘면서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가계 부채 증가는 불가피하지만, 최근 증가세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 대신 저금리의 악순환을 경고하는 메시지는 한층 확산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이제 인하가 불가능한 실효하한까지 떨어지면서 통화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실효하한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의 경우 사실상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릴 수 없다는 측면을 감안할 때 감내할 수 있는 금리 마지노선을 가리킨다. 앞선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측면과 더불어, 한은이 추가 조정을 가져가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제로금리 시대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은이 현재의 기준금리를 1년 이상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과 더불어, 코로나19가 극복 된 이후에도 지금의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적어도 내년까지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며 "특히 이번 금통위에서도 이 총재가 가계 부채 확대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추가 금리 인하의 허들은 더욱 높아졌다는 판단이며, 한은의 금리 정책은 상당 기간 동결 기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도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은이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금통위가 실효하한 수준으로 낮아진 기준금리와 금융불균형 리스크를 고려해 상당 기간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개선된 통화당국의 경기 인식 및 판단이 확인됐다"며 "'시한을 염두하지 않고 있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라는 이 총재의 발언은 코로나19의 종식이 다가오더라도 중장기적인 저금리 기조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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