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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픽] ‘산수화의 현대적 모색’ 윤산 작가가 선사하는 힐링 유토피아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9.03 13:40 수정 2020.09.03 12:57

산동의 사월, 2019 ⓒ갤러리K 산동의 사월, 2019 ⓒ갤러리K

산수화는 누구나 알지만, 막상 전통적 우리 그림에 ‘실경’이라는 말을 붙여보면 그리 쉽지 않다. 한국화라는 장르가 실경이라는 말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진경이나 실경이라고 하면 조선조 말의 진경산수와 겸재 정선(1676~1759,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성리학의 한 유파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조선 후기 성리학 가운데 기호학파의 한 계열로 이간, 김창흡, 이제, 이유봉 등에 의해 금수(날짐승과 들짐승)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상(五常, 사람이 항상 지켜야 할 5가지 도리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에 신(信)을 의미)의 성(性)을 구비하고 있다고 주장한 낙론계를 주목하게 된다.


이 사상을 겸재 정선의 그림과 직접 연결해 겸재 계열의 그림을 ‘형이상학’ 화하려는 노력은 이론적인 면에서는 높이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태도인지의 물음에서는 분명한 태도를 견지하기 어렵다. 그림은 그림일 뿐 사상이 아니며 더구나 학문일 수는 없다. 너무 이론화하다 보면 자칫 실상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적 풍경이니 진경이니 관념화니 하는 분류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세계를 대하는 관점의 문제다. 대상에만 관심이 있었지 대상을 향한 인간의 표현, 관점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림은 대상의 ‘옮기기’가 아니라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옮기는 기술에 대해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태도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바탕에서 실경이니 진경이니, 사실이니 구상이니, 현실이니 관념이니 하는 것들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작가 윤산 ⓒ 작가 윤산 ⓒ

윤산 작가의 산수화는 실재하는 풍경 위에 사의를 덧칠한다. 그는 자연과 대지에 대한 탐색을 이어감으로써 무심하고 평온하고 담백한 경지에 이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 ‘산동의 사월’을 보고 있자면 자연 속 흔들리는 꽃과 나뭇잎, 흙덩이, 한줄기 맑은 바람조차 놓치지 않고 마음을 썼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산수에 대한 그의 세심하고 따뜻한 애정 앞에 실경이니 진경이니 하는 말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가 붓끝으로 잡아낸 풍경 속에 시간이 정지해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어디선가 실경으로 보았으되 사실은 보지 못한 자연, 시간의 끝없는 흐름에도 어느 때건 우리가 가보기만 하면 거기 그렇게 남아 있을 것 같은 자연이다.


발품을 팔아야 가능한 시선이고 장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은 현장성을 보여준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만나는 것들이다 보니 스쳐 지나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섬세함을 담고 있다. 보아가는 풍경이 보이는 풍경과 다른 점이다. 그렇게 다가가는 풍경의 현장성은 윤산 작가의 장점일 것이다.


칠월, 2020 ⓒ갤러리K 칠월, 2020 ⓒ갤러리K

또 다른 그의 작품 ‘칠월’의 경우 숲의 초목과 그 속의 백로는 사실 한 화면에 담아내기에는 어딘지 상투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상투성은 도리어 익숙지 않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독특한 형상을 드러낸다. 평범한 장면이 독특한 해석의 장면이자 정황으로 바뀐다.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무시간성과 무장소성이라는 특성이다.


대표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세계는 소재의 친근성과 비친근성이라는 이중성, 그것들이 놓인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상충 어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친근한 소재와 기법이 오히려 자연을 비현실적 유토피아로 보이게 한다. 혹은 노장적 사유의 흔적을 은밀하게 내보이는, 의도된 몰현실성을 자연과의 일체화로 표현한 것은 아닐지. 어느 쪽이든 현실이 유토피아가 됨으로써 생기는 현실에 대한 거리감과 낯섦이 윤산 작가 작업의 전체를 이끌어간다.


엄연한 현실이면서 유토피아로 보인다면, 거꾸로 유토피아란 바로 현실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 자연스럽게 다다른다. 치르치르가 찾던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었듯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장기화에 따라 ‘코로나 블루’의 우울감이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요즘, 윤산 작가가 선사하는 힐링 유토피아에 잠시 머물러 보자.


윤산 작가/ 후소회 대상전(서울시립미술관), MBC 미술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중앙 미술대전 외 수상 다수, KIAF, 아시아프 AHAF, 청도 국제 미술제(중국), Revolution Art TAIPER(대만), 롯데갤러리, 경민 현대미술관, 대전 시립미술관, 오산문화재단, 갤러리 콩세유, 아트큐브 초대전, 오산문화재단 신소장품 외 그룹전 및 초대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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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지현 갤러리K 큐레이터 gallerykjihyun@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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