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이 당긴 불씨…적폐몰이 기회냐, 수해원인 분석이냐
입력 2020.08.11 04:00
수정 2020.08.11 05:58
문대통령, 수해 관련 "4대강 보 분석할 기회"
통합당 "복구도 끝나기 전에 또 이전 정부 탓
복구 끝나는대로 대대적 분석·평가 해보자"
섬진강 수계와 전국의 지류·지천에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난 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 분석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불씨를 당기자, 야권도 "제대로 원인을 분석·평가해보자"고 맞받았다. 이에 따라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가 다시 한 번 적폐몰이의 기회로 작용할지, 냉철한 원인 분석과 평가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댐의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당부한다"며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부동산 사태'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보좌관회의 참석 대상인 수석비서관 다섯 명이 일괄 사의를 표한 경황 없는 와중에도 "4대강 보 분석의 기회"라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현 정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전임·전전임 정권 평가의 기회를 얻은 것에 따른 자신감이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홍수 예방이나 용수 확보라는 목적 달성에 적당한 수단"으로 "일부 수질 악화와 생태계 변화가 있더라도 이익을 능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반면 감사원에서는 '4대강 사업'의 홍수 예방효과 편익을 0원으로 분석하기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일단 이번 집중호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섬진강 유역에서는 수해가 4대강 보 때문이라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본류가 지류가 넘치며 가장 큰 피해가 난 섬진강은 애초부터 민주당의 반대로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4대강 사업' 제외를 아쉬워하거나, 현 정권 들어 강바닥 준설을 적폐 보듯 하는 탓에 수해 피해가 커졌다는 원망의 목소리는 현장에서 들린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이날 화개장터 침수 현장에서 "섬진강이 하상(河床·강바닥)이 높아져 강 안에 섬(하중도)이 생길 정도였다"라며 "군수가 되고난 뒤 꾸준하게 강을 준설해달라, 강바닥을 파내달라고 요구했지만 중앙부처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4대강 사업'을 한 곳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는데, 섬진강은 (사업에서) 제외가 됐었다"라며 "섬진강 하상 정리를 하지 않으면 범람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주호영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4대강 보 평가의 기회' 발언을 겨냥한 듯 "다시 정쟁을 할 게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수해 방지에 필요하다면 빨리 준설을 하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이러한 피해가 또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선 되레 섬진강 '4대강 사업' 제외 아쉬움
'강바닥 준설' 적폐보듯 해 제때 못했단 지적도
섬진강댐 방류 탓도…환경부 이관한 정권책임
장날에 5일장 시장의 지붕 처마까지 물에 잠겨 수천억 원대의 큰 재산 피해가 난 전남 구례에서는 '4대강' 논란보다도 섬진강댐의 일제 방류를 문제삼는 목소리가 컸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이날 "주민들은 섬진강댐에서 이번에 한꺼번에 많은 물을 방류하면서 피해가 난 게 아니냐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여수·순천·광양 등 전남 동부권이 평소 물이 부족하다보니 섬진강댐이 물을 많이 가둬놓으려는 생각에서 비가 온다고 해도 미리 방류를 하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수자원공사를 환경부 산하로 옮겨 제방 등 하천 공간 관리는 국토교통부에서 맡되, 홍수 조절 기능 등 수량 관리는 환경부에서 하도록 한 것은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미리 방류하지 않고 수자원 확보만 생각하다가, 집중호우 때 뒤늦게 일제 방류를 했다면 정권 책임론을 모면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전남 구례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에 와서 강의 일부를 환경부가 관리하는 형편이 되지 않았느냐"라며 "환경부가 하천 (수량) 관리는 전문성이 별로 없어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 가능성에) 소홀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하천 관리는 국토부, 수질과 상수도를 관리하는 수자원공사는 환경부로 넘어갔다"며 "댐 방류는 수자원공사에서 맡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환경부로 간 게 맞기 때문에, 댐 관리를 잘못해서 늦게 방류했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부연했다.
이날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의장, 김은혜 대변인과 김선동 사무총장 등은 구례 5일장과 하동 화개장터 현장을 돌며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고 목소리를 들었다. 주민들이 요청한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민간 피해보상 한도 확대도 협조를 약속했다. '4대강 보' 탓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이번 수해를 '4대강 보 분석의 기회'라고 하자, 통합당도 수해 복구가 끝나는대로 대대적으로 원인 분석과 평가를 하자고 맞받았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대로 현장 행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당긴 불씨가 적폐몰이의 기회가 될지, 수해 원인의 분석·평가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수해 복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이전 정부 탓하는 발언을 했다"며 "통합당은 폭우와 태풍 피해 복구가 끝나는대로 하천관리부실 및 산사태 원인에 대해 정부에 대대적인 원인 분석 평가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