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이겨진 의회민주주의…'통법부 시대' 돌아왔다
입력 2020.06.16 00:09
수정 2020.06.16 04:31
민주, 범여 정당 의원 총동원해 본회의 강행
야당 의원 상임위 강제배정, 53년만에 처음
"오늘로 우리 국회 없어진 날, 일당독재 시작"
의회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렸다. 집권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들을 마음대로 상임위에 강제 배정한 뒤, 여당 의원들끼리만 본회의장에 모여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부독재 시절 이후 53년만에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로 되돌아가는 서막이 올랐다는 관측이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15일 오후 정의당·열린민주당·시대전환·기본소득당 등 범여권 정당 소속 의원들을 총동원해 본회의를 강행했다.
이날 전통적으로 제1야당 몫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등 6개 상임위의 위원장을 선출 강행하기 위해, 집권여당 출신인 박병석 국회의장을 통해 야당인 미래통합당 의원들 일부를 이들 상임위에 강제로 배정 조치하기까지 했다.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려면 해당 상임위의 전체 위원 명단이 확정돼야 하기 때문에 이같은 '꼼수'까지 동원된 것이다. 1967년 7대 국회에서 집권여당 공화당 소속 이효상 국회의장이 야당 신민당 의원들의 상임위를 강제 배정한 이래 53년만의 일이며, 1987년 이른바 '민주화'로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처음 저질러진 일이다.
통합당 의원들은 이같은 상임위 강제 배정을 인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날 본회의에 불참했다. 제2야당 국민의당 소속 의원 3명도 본회의에 동반 불참했다.
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연단에 홀로 올라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53년만의 야당 의원 상임위 강제 배정과 여당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을 질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의사진행발언에서 "국회의 존재 이유는 야당에 있는 것이고, 야당이 없는 일방통행의 국회는 헌법상 있을 이유가 없다"며 "역사는 오늘로써 우리 국회가 없어진 날, 일당독재가 시작된 날이라고 기록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국회에서 상대 정당 상임위원들을 동의 없이 배정한 것은 헌정사에 유례 없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며 "이런 역사에 없는 일을 한 것은 21대 국회를 망치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을 황폐화하는 첫 출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력은 세게 그립을 잡고 모을수록 힘이 셀 것 같지만, 손에 쥔 모래와 같다"며 "세게 쥘수록 흘러나가기 마련"이라고, 이같은 절대권력에 의존한 파행적이고 독단적인 일방 독주는 결국 파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