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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용호 의원의 '사전투표 폐지론', 시의적절하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5.06 07:00 수정 2020.05.06 05:08

세계 유례없이 짧은 선거운동기간, 더 짧아져

후보 검증·비교 불가능한 '묻지마 투표' 조장

정치신인에게 불리한 악법…표의 등가성 해쳐

21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10일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21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10일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전북 남원임실순창에서 무소속으로 재선 고지에 오른 이용호 의원이 사전투표제를 없애고 대신 본 투표일을 늘리는 등 투표 제도의 손질을 제안했다. 격랑의 시대를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로 15년 동안 재직하며 지켜본 이 의원답게 예리한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린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5일 "사전투표는 본 선거일에 불가피하게 투표하지 못하는 경우를 고려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제도 도입 이후 사전투표율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며 "상당수 지역에서는 심지어 사전투표율이 본 투표율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전투표에서 상당수 유권자들의 의사가 투표함 속으로 들어가버리면서 선거운동기간이 실질적으로 단축돼버리고 말았다.


2주라는 우리나라의 법정 선거운동기간은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유례없이 짧다. 미국·영국·독일은 아예 선거운동기간의 제한이 없어 정치인들이 상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선거운동기간의 제한은 있으나 법정 선거운동기간이 아닐 때에도 선거운동이 폭넓게 허용돼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경우 법정 선거운동기간에도 불가능한 호별 방문은 일본은 선거운동기간이 아닐 때에도 가능하다. 일본에 가면 공직선거후보자의 포스터가 가가호호 게시돼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집이나 가게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운동벽보를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와 자유선거의 원칙에 비춰볼 때, 선거운동은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되는 사례만을 열거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취해야 할 것인데도 우리나라는 법문과는 달리 사실상 규정된 선거운동 방식 몇몇만 허용되는 '포지티브 규제'를 채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현행 공직선거법은 1950년 제정된 구 국회의원선거법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이 법은 다시 1925년 제정된 구 일본제국의 보통선거법을 베낀 것이다. 일제는 보통선거 요구가 빗발치자 1925년 할 수 없이 보통선거법을 제정하면서 선거운동방식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우리나라는 이 일제의 보통선거법을 베끼면서 구미의 정치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기형적 법제를 갖게 됐다.


투표일을 뒤로 물러서 선거운동기간을 최대한으로 보장해도 부족할 마당에, 본 선거일 앞에 사전투표일을 이틀이나 둬서 가뜩이나 짧은 선거운동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이제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자처하는 나라가 취할 제도가 아니다.


이와 맞물려 현재의 사전투표제는 정치신인에게 불리한 악법이다. 선거운동기간이 사실상 단축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정치신인이 자신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할 시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짧은 법정 선거운동기간이 현역 국회의원의 기득권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일자, 마지못해 예비후보 제도가 도입됐지만 예비후보로 등록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명함 배포 등 몇몇 선거운동 효과가 극히 제한된 행위 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역 의원은 예비후보등록일이 시작됐어도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기까지 하니, 제도의 폐단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그러지 않아도 짧은 선거운동기간이 사전투표제 도입 이후 더욱 짧아지면서 후보자의 검증이나 인물 됨됨이, 정책 공약의 비교가 이뤄지기조차 전에 투표가 끝나버리고 있다. 사전투표제가 '묻지마 투표'를 조장하는 셈이다.


더해서 사전투표는 표의 실질적 등가성을 해치는 제도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에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중대 상황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경우, 알고 본 선거일에 투표하는 유권자와 모르고 사전에 투표해버린 유권자의 한 표의 가치는 형식적으로는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없다.


극히 예외적이어야 할 관외 사전투표 급증 의문
버스 대절해 위락 제공하며 단체투표? '안될 말'
신종 매표행위 기승…21대 국회서 손질해 마땅


이용호 무소속 의원(자료사진). ⓒ데일리안 이용호 무소속 의원(자료사진). ⓒ데일리안

이용호 의원은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정황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며 "사전투표일에 맞춰 관광을 빙자해 타 지역에서 투표를 하도록 동원하는 식이다. 총선 시기가 농한기인 농촌 지역구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종 관변단체·산악회·종친회 등 그 양상이 매우 광범위해 자칫 관권·금권·동원선거로 흐를 수 있는 허점에 노출돼 있다"며 "민주주의 최대의 축제인 선거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유권자는 본 선거일에 자신이 거주하는 주민등록지에서 투표할 수 있는데도, 매우 예외적이어야 할 관외 사전투표가 급증하는 이유를 놓고서는 의구심이 제기돼 왔다. 이 의원의 지적대로 그러한 동원·조직투표의 정황이 감지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정말로 사전투표일에 관광버스를 대절해 위락을 제공하면서 도중에 사전투표소에서 하차시켜 단체 사전투표를 유도한다면 선거의 공정성은 땅에 떨어지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버스 안팎에서 어떠한 작당 행위가 있더라도 선관위의 감시의 눈길이 미치기 어려워, 신종 매표(買票) 수법으로 기능할 우려가 있다.


이용호 의원은 "'사전투표 조작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 밝혔다. 동의한다. 이 시점에 사전투표제 손질을 제안하는 것이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표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데도, 용기 있는 제안을 하고 나선 것에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이 의원 본인은 재선 고지에 올랐다. 무소속인데도 재선될 정도로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추고 관리하고 있으며, 현역 의원으로서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데도 선거제도 손질을 제안한 것은 의로운 주장이다.


억지로 강행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파국을 맞이했기 때문에 어차피 21대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은 대대적인 손질과 개정이 불가피하다. 여야 정치권은 선거가 임박해서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선거법 개정 작업에 나설 일이 아니다. 개원 때부터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이 의원의 제안대로 사전투표제를 없애고 본 선거일을 늘리는 등 선거제도를 손질해야 마땅할 것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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