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180석 민심'을 윤석열 몰아내기로 오인하는 여권
입력 2020.04.20 05:00
수정 2020.04.20 05:14
총선 성적표 잉크 마르기도 전에 윤석열 퇴진 압박
권력형 비리 수사 왜곡 우려…법치주의 후퇴 비판
최근 정치부 기자들과 나눈 대화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이러다 대선 나가는 거 아니야?" 그것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미래통합당에서 말이다.
정치권에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공식이 있다. 여권이 때리면 때릴수록 주목받아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표적이다. 이 전 총재는 YS 정권에서 소신 발언으로 번번이 정부여당과 각을 세워 당시 정권의 기피 인물로 낙인찍혔지만, 이는 '대쪽'이라는 별명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이 전 총재는 이를 기반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었고, 2002년 대권에 도전했다.
물론 윤 총장을 이 전 총재와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살아온 세월도, 정치적 입지도 윤 총장과 이 전 총재는 너무도 다르다. 그럼에도 이를 언급한 건, 여권의 최근 행태를 보면 저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하단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총선을 통해 '무소불위'의 힘을 얻은 여권이 총선 성적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윤석열 때리기'에 화력을 쏟아 붓고 있다. '촛불'까지 꺼내들면서 말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선거 이튿날인 16일 "서초동에 모였던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개헌까지 언급했다.
검찰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난해 7월 윤 총장 취임 이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 등 정치적으로 다소 민감한 현안 다수가 흘러나왔다. 이때부터 여권의 '검찰 개혁' 목표는 윤 총장 사퇴가 됐다. 선거 과정에서도 여권은 '윤석열 대 조국' 등의 구도로 검찰을 '나쁜 권력'으로 몰아가는 데 바빴다.
여권 인사들의 '경고'를 보면 21대 국회 출범 전부터 윤 총장과 검찰을 뒤흔들고 권력형 비리 수사를 왜곡시킬 거란 우려가 짙어진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단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여권이 민심에 의해 17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개헌을 제외한 모든 걸 할 수 있는 '슈퍼 여당'이 된 건, 선거가 끝나자마자 윤 총장 사퇴를 압박하고 검찰을 입맛대로 개혁하란 뜻이 아니다. 여권이 윤 총장 사퇴의 명분으로 거론하는 윤 총장 가족의 의혹, 윤 총장 측근의 검·언 유착 의혹 등은 법리적 판단으로 따져봐야 하는 문제이지, 윤 총장의 거취와 연계할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이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3권분립 원칙에 따라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했다. 당시 윤 총장은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며 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