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직장 잃고 100만원 받으면 행복할까
입력 2020.04.13 07:00
수정 2020.04.12 20:20
기업 줄도산 위기 속 청와대·정부·여야, 국민 혈세로 매표 삼매경
“날씨도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사먹자. 돈 있는 사람은 알아서 사먹고, 없는 사람은 학급비로 사줄게.” 반장 광우의 말에 대다수의 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2학기 반장을 노리는 도원이가 반발하고 나섰다. “누구는 사주고 누구는 안사주고 그게 뭐냐. 어차피 학급비로 먹는 거 다같이 냉면이나 한 그릇씩 먹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도원이에게 쏠리자 부반장 평호가 끼어들었다. “광우야, 아이스크림은 반 애들 전부 사주는 게 낫겠다.”
보다 못한 인영이가 한마디 던졌다. “남의 돈 가지고 놀고들 있네.”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벌어질 이런 촌극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온 국민이 감염에 대한 우려를 넘어 경제 악화에 따른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판국에 청와대가 내민 카드는 소득하위 70%에게 가구당 평균 100만원씩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취지는 좋다. 당장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기왕이면 소비를 늘려 위축된 경기에 활력도 불어넣어준다면 금상첨화다. 그럴 만한 충분한 돈이 있다면 말이다.
지금 항공, 자동차, 정유 등 주요 업종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입고있다.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들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일부 기업과 업종은 정부의 자금수혈 없이는 생존이 위태로운 실정이다.
이미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한 이들이 속출하고 있고, 대기업들도 무급휴직 등으로 가까스로 고용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루아침에 대량 실직사태가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어디서 봇물이 터질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긴급 수혈을 위한 정부의 자금 확보는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에서는 2차 추경을 통한 자금 확보를 정부에 요청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그 2차 추경을 긴급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 온 정신이 긴급재난지원금 마련에 쏠려 있으니 기업들의 아우성이 들릴 리 없다.
이를 뜯어말려야 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처음엔 긴급재난지원금을 ‘매표(買票)행위’라고 비난하더니 스스로 ‘매표행위’ 동참을 선언했다. 한 술 더 떠 1인당 50만원 지급을 제안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노선 변경으로 ‘매표행위’의 효과가 희석될 것으로 우려되자 황급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 국민 모두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의 반격에 성급히 대응하다 보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매표행위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국민의 혈세를 서로 자기돈인양 표를 사는데 쓰겠다고 싸우는 여야의 모습이 딱 초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제를 살리는 데 쓰일 돈이 매표행위로 흘러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재난지원금을 받아들고 기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옆집 아저씨 이야기인 실직 사태가 앞으로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국민은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던 도토리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로 바꿨다고 환호하는 원숭이가 아니다. 직장을 잃었는데 100만원 받아들고 좋아할 바보도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총선에 집중된 정신을 경제 살리기로 돌려야 한다. 청와대도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충분한 의석수만 확보하면 안전해질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고 실직자가 속출하면 전 국민에게 100만원이 아니라 1000만원을 준들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