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2명의 서울 사망자, '방역 약한고리' 연이어 끊어져 숨졌다
입력 2020.04.09 03:50
수정 2020.04.09 13:14
감염 취약시설‧가족전파‧기저질환…3개의 약한고리
보완 필요성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정부 대응은 미흡
일부 지자체는 '안심숙소' 통해 보완 나서
지난 7일 서울에서 코로나19 환자 두 명이 숨졌다. 해당 환자들이 사망에 이른 과정을 되짚어 보면 방역 정책의 약한고리가 잇따라 끊어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마포구 망원동에 거주했던 A씨(44세·남)는 지난 19일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같은 날 서울의료원에선 입원 치료를 받던 B씨(91세·남)가 확진 한 달 만에 숨졌다.
A씨는 수도권 최대 집단감염지인 '구로구 콜센터'에서 근무한 아내(38)로부터 감염됐다. 아내는 콜센터 관련 환자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9일부터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자가격리 중 증세가 발현된 아내는 지난달 18일 확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튿날엔 함께 살던 A씨를 포함해 아들(15)과 딸(12)까지 모두 양성 반응을 보여 '일가족 감염' 사례로 분류됐다. 현재 부인과 아들은 완치 판정을 받고 격리해제 됐지만 딸은 서울 서남병원에서 치료중이다.
B씨는 자가격리 중이던 외손자(26세·남)에게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 집단감염지 중 하나인 서울 가산디지털센터에서 근무해온 외손자는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지난달 5일부터 자가격리 중이었다. 외손자는 B씨 확진 이전에 진행된 검사에선 음성 반응을 보였지만, B씨가 확진 판정을 받았던 지난달 7일 재검사에선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촘촘히 자리한 사람들이 비말(침방울)에 노출될 경우 바이러스가 쉽게 전파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사망자 A·B 씨의 감염원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A씨 아내·B씨 외손자)은 모두 방역 관리가 쉽지 않은 콜센터‧사무실 등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두 사람이 자가격리 중 가족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킨 것도 방역 정책의 약한고리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가족 간 감염은 방역 당국이 가장 우려해온 n차 감염경로 중 하나다. 중국 역학조사를 보더라도 n차 감염에서 가족 간 감염이 차지하는 비중은 65~75%에 달한다.
방역 당국은 가족 간 감염 최소화를 위해 △외출자제 △독립된 공간 확보 △치약 등 생활용품 별도 사용 △가족 간 대화·접촉 자제 등을 골자로 하는 '자가격리자 생활수칙 준수'를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A씨 아내‧B씨 외손자처럼 자가격리자가 무증상 환자이거나 증상이 잠복기를 거쳐 발현될 경우 가족 간 전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두 명의 사망자가 모두 기저질환자였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8일 0시 기준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200명 중 199명은 기저질환자로 파악됐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기저질환자는 감염에 따른 피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사망자 A·B 씨는 △감염 취약 시설 △가족 전파 △기저질환이라는 세 가지 약한고리가 연이어 끊어져 피해를 입었지만, '피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은 미흡한 상황이다.
방역 당국은 자가격리자의 동거가족 중 고위험군을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의료시설 종사자 등의 직업군에 한해 업무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뿐이다.
일부 지자체는 약한고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도록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 노원구 등은 지역 호텔과 협약을 맺고 2차 감염 우려가 있는 자가격리자 가족들이 일 2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하고 묵을 수 있는 '안심숙소'를 운영 중이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자가격리자가 독립된 생활이 어렵거나 동거인 중 만성질환자 같은 고위험군이 있다면 시설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