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옥중서신 ③] 친박 군소정당 '청천벽력'…존립 근거 '흔들'
입력 2020.03.05 03:00
수정 2020.03.05 05:54
"기존 거대 야당 중심 힘 합쳐라"…최대 악재
"합당하라는 뜻 아냐" 견강부회·아전인수 난무
선거연대·후보단일화 압박하겠지만 성사 희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친박(친박근혜)계 군소 신당들이 원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으면서, 이들 정당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4일 오후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전격 공개했다. 친박계 군소 신당들은 기자회견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알지 못했던 옥중서신의 공개 자체도 충격이지만 내용 또한 이들 친박계 군소 신당들에게는 천만뜻밖·청천벽력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에서 중도보수대통합으로 탄생한 미래통합당을 "보수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 들었던 모두가 힘을 합쳐달라"고 호소했다.
중도보수대통합을 통해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일부 세력이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던 탄핵에 대해서도 별반 언급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탄핵과 구속으로 나의 정치여정은 멈췄다"고 '역사적인 사실'로서 수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중도보수대통합을 '유승민 의원에게 무릎을 꿇었다'며 강도높게 비난해온 자유공화당은 물론, 박 전 대통령의 옥중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운운했으나 중앙당 창당대회 때도 끝내 공개하지 못했던 친박신당의 존립근거마저 뒤흔들 수 있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기존의 우리공화당과 자유통일당을 합당하는 한편,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공개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순례 의원의 통합당 최고위원 사퇴와 사실상의 합류 선언을 이끌어내며 이제 기세 좀 올려보려 한 자유공화당은 합당 출범 이틀만에 최대 악재를 맞이했다는 관측이다.
이들은 당장은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에 담긴 뜻을 최대한 넓게 해석하면서 통합당을 상대로 선거연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이번 서신에서 담은 내용들은 뜻이 상당히 명료한 편에 속해, 과연 이같은 전략이 지지자들에게조차 먹혀들지 의문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자유공화당과 친박신당 등은 당혹감 속에서도 이날 오후 잇따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환영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입장 발표에서 옥중서신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등의 내용을 강조하려 애썼다.
정치권 관계자는 "옥중서신의 내용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박심팔이'가 유일한 존립근거였던 이들 정당이 반응을 내놓지 않거나 서신에 담긴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미래통합당에는 미래가 없다'고까지 비난하던 이들이 '기존 거대 야당에 힘을 합쳐라'는 메시지를 환영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날 일단 옥중서신을 내놓기는 했으나, 여전한 영어(囹圄)의 몸이기 때문에 자신의 서신을 부연설명하는 등 상시적 의사소통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점에 착안해 친박계 군소 신당들은 일단 박 전 대통령의 서신에 담긴 내용을 최대한 넓게 해석하는 등 견강부회·아전인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힘을 합쳐야할 구심점으로 지목된 '기존 거대 야당'이 미래통합당임을 부인하거나, 자신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수다. 이 때문에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는 메시지를 백기투항·개별입당보다는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를 통해 '힘을 합치는' 개념으로 전용하고 통합당을 상대로 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친박신당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열하지 말고 하나로 뭉치라'는 것인데, 합당하라는 뜻은 아니고 연합·연대도 있다"며 "합당이 아니라 후보 단일화라든지, 분열하지 말고 (같이 문재인 정권과) 싸우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또, 조원진 자유공화당 공동대표는 통합당을 향해 "우선 공천 작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빙자해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지분'을 챙기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통합당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개연성은 희박하다. 4·15 총선 승리의 열쇠인 '중도층'을 사로잡아야 하는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태극기 부대'에 지분을 챙겨주는 모습은 자칫 '수렴청정'을 받는 모양새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통합당은 무반응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합당이 무반응으로 나올 경우, 친박계 군소 정당들은 '힘을 합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을 거부한다고 비난하고 나설 것"이라면서도 "이미 박 전 대통령이 기존 거대 야당 중심으로 총선을 치르라고 '가르마'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같은 비난이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