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주총-중] "내가 있는 곳이 주총장"…재계, 전자투표제 확산
입력 2020.02.19 05:00
수정 2020.02.18 21:28
모바일·PC로 주주 권리 행사…삼성전자·현대차그룹 등 재계 속속 도입
섀도 보팅제도 폐지·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로 전자투표 도입 가속화
주주 권익 증대 및 기업 투명성 제고 반면 “현장감 떨어진다” 지적도
매해 3월 삼성전자 주총장 앞에 길게 늘어선 소액주주 행렬이 이번부터는 사라지게 될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재계가 올해 주주총회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해마다 겪었던 '주총대란' 부작용이 사라질지 관심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들이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PC로 본인 인증만 하면 쉽게 의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있어 주총장에 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주주친화정책으로 꼽힌다.
섀도 보팅제 폐지·국민연금 참여로 전자투표제 확산
기업들은 주주 편의와 권익을 증대할 뿐 아니라 기업의 의사 결정 투명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에 전자투표제 도입을 늘리고 있다.
예탁결제원을 통해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이용한 회사는 581개로 전년 보다 12.4% 늘었다. 의결권을 행사한 주주는 10만6259명으로 전년 3만6141명에서 194% 급증했다.
전자투표제는 2010년 도입됐지만 초반 기업들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주총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투표한 것처럼 간주하는 '섀도 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이 섀도 보팅제를 악용해 대주주의 입맛대로 주총 안건을 통과시키고 주총 개최일을 집중시켜 소액 주주 의결권이 저해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섀도 보팅제는 2017년 말 폐지됐다.
섀도 보팅제 폐지 이후 주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기업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주주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전자투표제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현대차그룹도 전자투표 전면 시행…기업 투명성 제고
올해 삼성전자가 전자투표를 도입하기로 했고 현대차그룹도 기존 현대글로비스, 현대비앤지스틸, 현대차증권 등 3곳에서 나머지 9개 상장 계열사로 시행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이미 전자투표를 도입한 SK, 포스코, 신세계, CJ 롯데에 이어 삼성, 현대차가 가세하면서 LG를 제외한 주요 대기업들이 전자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자투표에 참여하는 숫자는 올해 수십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투표제 도입 여부를 놓고 가장 주목되는 기업은 한진그룹이다. 남매간 경영권 다툼으로 소액주주 표심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전자투표제 도입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총에선 그룹 총수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조 회장측 우호 지분은 33.45%이며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 등이 합세한 3자 연합의 우호 지분은 31.98%로 불과 1.47%p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경영권 이슈로 올해 주총 참석률은 작년(77.18%)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양측은 10%p 가량의 추가 우호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투표제 도입이 어느 쪽에 유리할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전자투표제 글로벌 확산 추세…”단점 보완해 장점 극대화”
전자투표제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에서 전부터 도입·시행하고 있는만큼 확산 추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와 주총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자투표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주주의 의견을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고 현장에서 회사 현안에 대한 자유로운 질의나 토론이 힘들다는 점에서 전자투표제에 대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회사에 앙심을 품고 경영방침에 반대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가치와 주주 이익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자투표제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