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과 경찰, 국민을 바보로 알았나
입력 2019.03.14 08:13
수정 2019.03.14 08:36
<하재근의 이슈분석>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이 덮인 양상 너무 부실하고 대담
<하재근의 이슈분석>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이 덮인 양상 너무 부실하고 대담
당시에도 이상한 사건이었다. 2016년에 정준영이 전 여자친구에게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런데 당시 경찰이 정준영의 휴대전화를 압수하지도 않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휴대전화가 범행도구이자 증거인데 그것을 확보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했다.
불법촬영 사건에서 휴대폰 조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더 나아가서 외장하드,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도 전면 조사를 해야 하고, 유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P2P 사이트 등에 대한 인터넷 접속기록도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찰이 휴대폰조차 확보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정준영의 태도도 이상했다.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했다가 그 다음엔 고장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바꾸는 사람을 경찰이 의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런 정준영이 휴대폰을 사설 복원 업체에 맡겼다고 하자 경찰이 그걸 그대로 믿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대로 송치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당시에도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놀라운 보도가 나왔다. 정준영 카톡 메시지 제보자 대리인인 방정현 변호사가 추가 제보를 받았는데, 그게 2016년 수사 당시 증거 인멸 정황이라는 것이다. 한 경찰이 사설 복원 업체에 ‘데이터 복원 불가 확인서’를 요구했다고 한다. 업체 측에선 거부하고 복원하겠다고 했는데도 경찰은 기다리지 않고 송치했다고 한다.
정말 황당하다. 경찰이 가해자를 위해 증거를 누락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이라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본 것일까?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셈이다.
불법촬영 수사에서 범행 도구 및 증거인 휴대폰을 확보하지도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황당한 일을 저지른 것도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대본이 허술하다고 질타 받을 것이다. 누가 봐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처리인데 국민적 주목을 받는 사건에서조차 태연히 그런 식으로 사건을 ‘뭉갠’ 것이다. 국민의 이목을 두려워했으면 이럴 수는 없다.
이런 황당한 일처리로 사건이 실제로 덮이고 별 구설수도 없이, 조속한 방송복귀까지 일사천리로 잘 진행이 됐으니 얼마나 세상이 쉽게 느껴졌을까? 이렇게 크게 주목 받는 사건마저 왜곡했다면 다른 사례는 없겠는가?
지금 경찰이 질타를 받고 있는데 검찰에도 의혹은 있다. 2016년 당시 검찰에는 정준영의 휴대폰이 제출됐다고 한다. 당시 기사엔 이렇게 나온다. ‘검찰은 정준영에게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디지털포렌식 기법으로 분석했으나 문제가 된 영상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정준영 휴대폰 속 수많은 범죄 정황을 무시하고 당장 고소당한 영상 없다는 이유만으로 덮었다는 걸까, 아니면 정준영이 가짜를 제출했는데 검찰이 그것도 확인 안 했다는 걸까?
2018년 11월에도 정준영 불법촬영 영상 신고가 있었다. 당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는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하는 바람이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는 왜 영장이 반려된 걸까?
총체적인 조사가 필요해보인다. 연예인 차원이 아니라 공권력에 대해 들여다봐야 한다. 다른 사건들을 황당하게 뭉갠 것은 없는지 말이다. 지금 정준영 사건의 선정성에 가려서 버닝썬, 아레나 등의 소식이 묻혔는데 그곳의 공권력 유착 의혹이야말로 국가 기강과 관련된 부분이다.
나이트클럽, 클럽 등의 성범죄, 마약, 유착 의혹이 수십년 됐는데 왜 발본색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아레나에서 수백억 원대 탈루 혐의가 나왔는데 이게 누군가의 묵인 없이 가능한 일이었는지, 연예인 이름은 나오는데 범죄의 온상이라는 클럽 VIP룸의 이용자들 중에서 특히 범죄 연루 혐의가 있는 사람들 이름은 왜 안 나오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클럽 VIP룸 이용자들은 국외 부자들 또는 국내 유력한 집안 자제들일 가능성이 높다. VIP룸에서 마약 성범죄가 저질러졌으면 이들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2016년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이 덮인 양상이 너무나 부실하고 대담해서 놀랍다. 그럴 정도로 대담하고 국민을 우습게 안다면 곳곳에서 수많은 부정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공권력을 전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