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융 자율경영](중) 불도저식 노동이사제...득보다 실 많다
입력 2018.02.05 06:00
수정 2018.02.05 06:45
주식회사 분업체계 깨뜨릴 우려
특정 계층 이익 대변으로 국한
노조추천이사, 이사회 군림 가능성
새 정부들어 금융권의 자율 경영이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역행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거센 입김에 노조의 역대급 경영권 개입 주장까지 더해져 거버넌스 자체가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파고로 금융 새 패러다임에 대한 적기 대응이 지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상 '이중관치'로 정체를 넘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래를 정조준하고 있는 한국 금융이 처해 있는 현재의 그림자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던 노동이사제가 해를 바꿔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회사의 경쟁력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일때 '노동이사제' 도입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상태고 최근 정부와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 추진은 강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주주들로 구성이 되있는 주인없는 금융회사들의 경우 정치권을 등에업은 노동계의 불도저식 노동이사제가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노동이사제가 금융권의 곪아있는 병폐들을 솎아내는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노조가 경영진과 주주위에서 군림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치(官治)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노동이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주주와 경영진, 이사회, 근로자의 역할 경계가 크게 허물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영진과 이사회의 독립성을 추진하려다 자칫 금융회사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이사제, 주식회사의 분업체계 균형파괴·소액주주 권한 침해 우려
노동이사제가 본격 도입되기도 전부터 찬반 입장이 갈리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찬성 이유는 금융권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노동이사제를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이사제가 새로운 관치로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에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을 등에 업은 노조측의 불도저식 노동이사제가 자칫 부작용을 키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에서 노동이사제의 역할이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서다.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회사의 가치는 무시한채 근로자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문제가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노동이사제는 경영권 전반을 위축시켜 경쟁력 저하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이는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목적의 금융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부작용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영리조직은 주식회사제도를 통해 발전했는데 주주와 경영진, 이사회, 근로자 4개의 그룹이 각자의 역할에 맞게 분업체계가 잘 작동했기 때문"이라며 "노조가 이사회의 역할을 요구하면 주식회사의 조직 균형은 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이사제가 경영진의 힘을 견제하는 도구로 쓰이기보다 기존의 경쟁력마저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주주들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주주들이 주인인 금융회사의 역할을 수익창출인데 어느 한 그룹의 이익만을 대변하다가는 금융회사 전반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진 위에 군림하면서 제대로된 의사결정을 방해할 가능성도 크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금융회사의 시스템으로는 노동이사제 정착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국내 기업의 현 시점에서 노동이사제가 잘 정착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경서 고려대학교 교수는 최근 정책심포지엄에 참석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사회가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할지 의문"이라며 "국내 기업은 특정한 지배주주, 경영진, 이사회를 위해 경영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로 간다는 것은 실험에 가깝다"고 꼬집기도 했다.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라도 노조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금융회사의 전체 이익이 아닌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로 국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관치를 뿌리뽑기보다는 경영진을 흔드는 또 다른 관치라는 폐해로 전락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인사는 "금융당국이 이러한 금융회사의 부정부패나 비리 등을 감독해야하는데 오히려 낙하산 문제 등 금융권의 가장 뿌리깊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