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직 사양한 이재용...승계 위해 국민연금에 손실?
입력 2017.08.22 06:00
수정 2017.08.22 06:40
<이재용 운명은⑧>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경영권 승계 목적 아닌 계열사간 시너지 창출
합병 비율 주가로 산정...주식 처분 로비도 입증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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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비율 주가로 산정...주식 처분 로비도 입증 안 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재판에서 특검과 삼성측 변호인단이 치열하게 맞붙은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으로, 이를 위해 지난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1차 독대 때부터 청탁하는 등 전방위적인 로비를 했다는 것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의 승마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반대급부로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하여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지원하도록 했다는 것이 특검 주장의 요지다.
반면 삼성측 변호인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한, 계열사 사업간 시너지 창출을 목적으로 이뤄진 것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또 2차 독대 시점(2015년 7월25일)에는 이미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 결의(7월17일)가 이뤄진 터여서 포괄적인 청탁이 있었다는 주장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민간기업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청와대에 청탁할 사안이 아니며 이 부회장 스스로도 승계를 사양해 왔다고 지적했다.
◆참모진 권유에도 회장직 사양했는데, 승계때문에 합병 추진?
특검의 주장이 이치에 맞으려면 가장 먼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일환으로 추진됐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50여 차례에 걸친 공판에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나 증언이 나오지 않으면서 오히려 시너지 효과 창출과 바이오 등 신성장동력 육성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변호인단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이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져 온 만큼 향후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겠지만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지난 2014년에서야 경영 전면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회장 취임 등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도 특검의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다. 이 부회장은 소속사인 삼성전자와 관련된 사안에는 직접 관여했다. 그러나 계열사 업무는 주로 미래전략실에서 전담해 왔다. 이 부회장 스스로도 경영권 승계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는 것이 재판에서도 입증됐다.
김종중 전 삼성 사장은 지난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이건희 회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최지성 전 부회장 등 참모들이 이 부회장에게 '빨리 회장직에 취임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수차례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그 때마다 이 부회장이 회장님이 와병 중인데 제가 지금 이렇게 나서기는 어렵다며 매번 사양했다“고 증언했다.
◆김상조 위원장도 인정한 삼성의 집단경영체제
‘삼성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10년간 경영권 승계가 진척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재판에서 “김종중 전 삼성 사장이 내게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이 살아계시고 스스로 여러 가지 준비가 부족하다며 승계를 사양한다'고 말했다"며 ”아직 삼성은 이재용 체제의 완성 전으로,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스스로 경영권 승계를 사양해 온 상황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만을 추진했다고 보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목적은 차지하고 합병 지원 청탁 문제만 보더라도 무리수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기를 따져보면 합병 지원 청탁이 단 한 차례의 짧은 만남에서 이뤄졌다는 것인데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의혹 제기는 가능하겠지만 명백한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사적 이익 없는데...법조계 "논리의 비약, 입증 어려워"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으로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대규모 이득을 취했고 이 과정에서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애초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비율 문제가 잘못 산정됐다는 것에 근거한 것인데 무리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당시 합병비율은 시장 가치를 반영한 주가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오너 일가가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합병 후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만큼 현 단계에서 손해 여부를 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주이기도 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주가 상승으로 총 6조9000억원의 평가차익을 내기도 했다.
또 합병 이후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분을 매도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 이득을 취했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 합병 후 신규로 발생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필요한 처분 주식 수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이미 재판에서 입증되지 못했다.
특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물산 합병 후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필요한 처분 주식 수를 삼성 측에 유리하도록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줬으며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재판에 이를 사실로 입증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증인으로 출석한 공정위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들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내용이 없어 의혹으로만 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의 주장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이뤄졌고 이에 대한 지원 청탁이 있었다는 단정이 내포돼 있다”며 “이를 전제로 해 다른 내용들을 끼워 맞추다보니 논리의 비약으로 사실 입증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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