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말 지원, 삼성이 해외로 재산은닉?
입력 2017.08.20 06:00
수정 2017.08.20 10:05
<이재용 운명은⑥>페이퍼컴퍼니 주장 근거 없어...컨설팅 계약도 정상
송금한 금액 서류 내용대로 사용...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도 무력화
송금한 금액 서류 내용대로 사용...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도 무력화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역대 재벌총수 중 두 번째로 형량을 구형하면서 양형기준으로 삼은 '재산국외도피죄'에 대해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형한 징역 12년형에는 ‘재산국외도피죄’ 혐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재산국외도피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도피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법정형이 징역 10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가지 혐의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것으로 뇌물공여죄의 처벌 규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특검은 이번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이후 비덱스포츠로 개명)를 통해 마필 및 차량 구매 등 용역비 명목으로 허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이 회사의 명의의 독일 KEB하나은행 계좌에 송금한 행위가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외환거래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와 함께 최 씨의 딸 정유라에게 고가의 말을 제공하면서 허위 용역계약을 했다며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그러나 특검의 이같은 논리들은 재판이 진행될수록 설득력을 상당히 잃었다. 법정에 선 증인들이 특검의 주장에 반하는 증언들을 잇달아 내놓았고 삼성 변호인단이 제시한 반대 증거들도 이들 증언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았고 뇌물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자 특검이 재산국외도피죄 적용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뇌물 공여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산국외도피죄까지 들고 나온 특검의 논리는 애초부터 불안한 ‘사상누각’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이 재판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재산국외도피죄와 외국환거래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하지만 재판부가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혐의들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코어스포츠가 페이퍼컴퍼니?…직원·사업장 갖춘 실체있는 회사
특검이 적용한 재산국외도피죄가 성립되려면 '코어스포츠'가 페이퍼컴퍼니(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기 위해서 실체가 없는 회사와 불분명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특검의 핵심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재판에서 코어스포츠는 직원과 사업장을 갖춘 실체가 있는 회사라는 것이 입증된 상태다. 증인으로 출석한 법인 계좌관리 및 영수증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장 모씨에 따르면 코어스포츠 소속 직원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취업비자를 받았고 급여도 법인계좌를 통해 지급받았다.
삼성측 변호인단은 장 씨가 코어스포츠 근무 당시 회계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이 자료에는 코어스포츠 직원들의 명단·급여·세금내역·보험 관련 사항 등이 자세하게 기재돼 있다.
최 씨가 소유한 독일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서 커피숍 운영 및 영수증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김 씨도 비슷한 취지의 증언을 내놨다. 그는 비덱스포츠의 영수증 등도 함께 처리하며 이를 세무사에 전달했고 세금 신고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서 사용되는 비용의 영수증 분류 및 비덱스포츠의 말과 관련돼 사용되는 지출 내역 등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며 “영수증들을 아무렇게나 합쳐 제출하려고 하면 독일 세무사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측 변호인단은 이러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코어스포츠가 설립 시기부터 승마 관계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업무 분담을 시켰고 실제로 법인 소유 승마 훈련장 및 코어스포츠의 현지 행정법무법인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특검의 논리는 빛이 바랬다.
특검이 주장하고 있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도 이미 재판에서 무력화된 상태다. 특검은 지난 2015년 9월에 작성된 삼성의 '예금거래신고서'를 증거로 제시하며 삼성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외국환거래법은 미화 2000달러(약 225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해외에 지급하고자 할 경우 외국환은행의 장에게 사유와 금액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검이 제출한 신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우수마필 및 차량 구입을 위한 대금 지급'이라는 명목으로 삼성전자 명의의 독일 은행 계좌에 319만 유로(약 43억원)를 송금했다. 그러나 기재된 사실과 달리 마필의 소유권이 최 씨 측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신고 내역을 허위 작성했다는 것이 특검의 논리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 역시 현업 실무자들의 증언에 의해 무력화됐다. 삼성이 마필과 차량을 구입한 것으로 신고된 목적은 올바르게 이행된 것이며 그것을 최종 사용한 사람이 삼성이 아닌 제 3자라도 그 자체로는 외국환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9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윤 모 서울세관 주무관은 “예금거래신고서에 기재된 목적대로 우수 마필과 차량 구입에 맞게 사용됐다면 문제가 없다”며 “삼성전자가 사용할 목적으로 신고했다는 의미에 부합한다면 위반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코어스포츠에 대한 계약금 송금 절차를 담당했던 우리은행 직원 김 씨 도 "마필을 구매인 명의로 취득했다면 결론적으로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며 "예금거래신고 단계에서는 최종 목적까지 기재할 필요는 없다"고 증언했다.
◆특검, 말 소유권 입증 못해...혐의 적용 어려워
특검은 비덱스포츠가 독일 현지 승마코치이자 말 중개상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에게 '비타나'와 '살시도'를 각각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말 세탁'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근거로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 씨에게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최 씨가 삼성 모르게 말 교환계약을 시도한 것으로 실제 말 소유권이 삼성에 있었기 때문에 비덱스포츠와 헬그스트란드 사이의 계약은 삼성의 항의로 인해 실제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이 삼성측 변호인단의 논리에 부딪혔다.
또 정 씨가 타던 '라우싱'이 지난 6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특검의 최 씨 소유 주장도 힘을 잃었다. 삼성전자가 헬그스트란드와 삼성전자가 매매계약을 해지하고 말 소유권을 되돌려 받았기 때문이다. 라우싱의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 씨에게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삼성 측 변호인단은 “쟁점은 예금 거래된 돈을 최종적으로 누가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마필과 차량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됐느냐"라며 "(삼성이 소유권을 갖고 있었던 만큼)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