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글로벌 기업 총수 구속으로 해외부패방지법 ‘부메랑’
입력 2017.02.17 07:23
수정 2017.02.17 07:55
뇌물공여 혐의...미국 등 주요국서 제재에 나설 가능성
해외투지자본에게 ISD 등 통해 공격 빌미 제공할 수도

17일 재계와 학계에 따르면 아직 향후 재판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사법처리되면 미국 정부는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을 통해 제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게 될 전망이다.
지난 1977년 제정된 이 법은 미국 증시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해외 국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공정한 경쟁을 해쳤다고 판단되면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해당 기업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법에 의해 상당한 제제를 받은 바 있다. 독일 전자기업 지멘스는 지난 2008년 중국·러시아·베네수엘라·멕시코·이스라엘 등에서 공무원들에게 총 14억달러(약 1조630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총 8억달러(약 935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또 벌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미국 연방정부와의 사업이 금지되고 기업 인수·합병(M&A)도 거부되는 등 다양한 제제를 받게 돼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상장기업이 아니고 미국에서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한 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한 적이 없어 아직 대상은 아니지만 지난 2008년 개정된 이 법의 적용범위가 확대된 바 있어 향후 제제 대상 확대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지난달 20일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까지 거론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자국기업 보호를 명목으로 외국기업 제제 수단으로 이 법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중국에서 생산한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30~50%의 반덤핑관세 부과를 최종 결정하는 등 이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뇌물죄가 성립되면 그 대가로 지목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판단으로 귀결되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소송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엘리엇이 투자자국가간소송(ISD) 제도를 악용해 합병비율 재산정 등을 놓고 법적소송을 벌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향후 해외 투기자본들이 소송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ISD는 투자대상국 정부가 인가나 규제 폐지 등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아 외국인 투자자가 손해를 볼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글로벌 기업 총수의 구속으로 인한 기업 신인도와 브랜드가치 하락은 물론이고 투기자본의 소송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앞으로 투기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뿐만 아니라 소송 대응에도 신경 써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