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고공행진, 문재인도 웃을까
입력 2016.11.23 18:56
수정 2016.11.23 18:56
선명성 무기로 10%대 넘어서 TOP3 등극, 반기문도 바짝 추격
'날개를 단' 이재명 성남시장의 고공행진은 언제까지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한 달을 넘어선 가운데,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 시장의 비상(飛上)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여론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무선 100% 방식으로 실시한 11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이 시장은 지난달 26일부터 지지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이번 조사에선 전주(10.9%)대비 1.4%p 오른 12.3%를 기록했다. 특히 전주에 이어 ‘마의 10%대’를 넘어서면서, 2주 연속 ‘BIG 3’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권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이 시장이 손꼽히는 이유다.
이 시장이 존재감을 드러낸 건 야권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사퇴를 공개 촉구하면서다. 특히 그는 타 야권 주자들이 하야와는 거리를 두며 여론을 살피던 지난달 29일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직접 참석해 “우리는 박근혜에게 월급을 주고 그 권한을 맡긴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선보였다. 당시 이 시장의 연설은 SNS상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같은 시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야권 주자들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촉구하면서도, 사퇴 또는 하야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대통령 궐위 시 정국을 수습할 현실성 있는 대안이 마땅치 않은 데다, 시민사회 주도의 촛불집회에 섣불리 몸을 맡겼다가 자칫 중도층 유권자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 정국은 곧바로 차기 대선과 연결되는 시점인 만큼, 야권 대선 잠룡들로서는 여론의 요구와 정치적 전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장의 경우,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민주당 의원에 비해 뒤늦게 레이스에 뛰어들었고, 정치적 기반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정가에선 “잃을 것이 없어서 더 자유롭다”란 분석도 나온다.
이 시장의 부상과 함께 주목되는 것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지지율 추이다. 반 총장은 지난달 19일 조사(25.4%)를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해 일주일 뒤 문 전 대표에게 3.5%p 뒤지며 1위 자리를 내준데 이어, 이번 조사에선 16.7%까지 떨어졌다. 3위까지 추격한 이 시장과의 차이도 4.4%p에 불과해 가까스로 면을 세웠다.
물론 반 총장이 지난 2일부터 16일까지 3주 간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지지율 최대치(28.6%)를 기록한 9월 당시까지 시야를 넓혀 전체 추이를 살펴볼 땐 하락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울러 동일조사 한 달 사이에 200% 이상 뛰어오른 이 시장의 상승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전망이다. 따라서 현재까지와 동일한 추이가 이어질 경우, 이론상 향후 2주 안팎으로 반 총장과 이 시장의 지지율 순위가 뒤바뀌는 역전극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지율 갉아먹지만...이념 스펙트럼 재정비에 흥행카드도
문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이후로 줄곧 지지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20%대 초반에 머문 채, 좀처럼 30%에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같은 야권 주자이지만 일찍이 압도적인 선명성을 드러낸 이 시장에게 문 전 대표 지지율의 일부분이 빠져나간 결과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이재명 시장이 아니었으면 문재인 전 대표가 지금보다 더 많은 수치를 받을 수 있었는데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수치상으로는 문 전 대표가 피해를 입은 모양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의 이념 스펙트럼 이동과 △야권의 대선 경선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이 시장의 비상은 야권의 거대 흥행카드로 작용할 거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해석이다.
즉, 문 전 대표 지지층의 일부인 ‘강성 친노’ 그룹으로 인해 그간 중도층 유권자는 물론 당내에서도 문 전 대표의 폐쇄성을 지적해왔다. 문 전 대표가 타 대선 주자군에 비해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시기가 늦고, 탄핵 언급을 꺼린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반면 최근 이 시장의 ‘도발’을 계기로 문 전 대표는 강경한 이념 스펙트럼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난 형국이 됐다.
김 소장은 “문재인의 ‘친노’, ‘강경’ 이미지 때문에 표를 주기 망설였던 사람들도 이재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중도로 밀려난 문재인을 찍을 수 있게 된다”며 “이재명에 의해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이념 스펙트럼이 강제로 이동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문재인에게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이 시장으로 인해 야권 지형이 대폭 넓어진 것 역시 대선에서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이 시장이 반 총장을 뛰어넘지 못한다 해도 박원순 시장을 위협할 만한 기세를 유지하는 한, 야권 대선 경선의 흥행이 보장된다는 기대도 나온다. 민주당 친문계 의원실 관계자는 “문재인, 안철수 등은 영향력을 떠나서 더 이상 흥행이 될 수가 없는 올드한 인물”이라며 “민주당 경선이 이재명으로 인해 훨씬 다이나믹하고 재밌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문제는 ‘잠든 보수층’의 재기다.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 파문 이후 현재까진 여권의 전통적 지지층에서조차 지지 의사 밝히기를 ‘회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여당 지지자의 다수가 무당층으로 이동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실제 알앤써치 조사 결과, 지지정당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는 전주(33.9%)에 이어 30.3%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 정국 수습에 나서고 박 대통령이 보수 재결집을 노릴 경우, 보수층이 다시 재기하면서 반 총장의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30년간 1번을 지지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2번을 뽑을 순 없다. 결국 사태가 수습되면 새누리당 지지율도 25%까지는 복귀할 것”이라며 “이재명의 계속적인 고공행진이 힘들 수 있다고 예상되는 것도 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시장과 반 총장의 순위 변화와는 무관하게 이 시장으로 인해 야권 지형이 대폭 넓어진 만큼, 차기 대선에서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여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