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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회고록', 새누리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답답'

장수연 기자
입력 2016.10.21 18:23
수정 2016.10.22 12:22

야권 선두주자 대북·안보관 문제삼아 한동안 맹폭

도움되는 증언·자료 못 구해 진실 접근에 한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여정부 시절 외교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펼쳐 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송민순 회고록 파문'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구성한 'UN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갑윤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북한인권결의안 진상규명위원회 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야권 선두주자 대북·안보관 문제삼아 한동안 맹폭
도움되는 증언·자료 못 구해 진실 접근에 한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논란에 따른 새누리당의 공세가 국면 전환을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섰지만 실체적 진실에 접근 없이 '문재인 때리기'에만 맴돌고 있는 모양새다. 당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지만 참여정부 때 벌어진 일이어서 도움되는 증언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데다 관련 자료를 구하기도 만만찮다.

새누리당은 지난 14일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처음 불거진 이후 야권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대북·안보관을 문제 삼으며 맹폭을 퍼부었다. 1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송 전 장관 재임시 외교부 차관보였던 심윤조 전 의원을 불러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도록 하고 이를 SNS로 실시간 중계까지 하며 파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힘썼다. 최고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 최고중진연석간담회 등 새누리당의 각종 회의에서는 예외없이 문 전 대표의 이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문 전 대표를 향해 "진실을 밝히라"는 데서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당시 진상 파악에 도움이 될 새로운 자료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UN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결재 요청사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정갑윤) 역시 18일 첫 회의를 열고 21일까지 총 세 차례의 회의를 가졌지만 '진실을 규명할 방법은 문 전 대표의 입장 표명밖에 없다'는 결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규명위 간사인 박맹우 의원은 "문 전 대표가 그런 사실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해 '있다' 또는 '없다'고 하면 끝이다"고 말했다. 전희경 의원도 "진실을 알고 있는 문 전 대표가 진실 여부를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향후 규명위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상임위 별로 당시 관련 자료를 수합 △대통령기록물 열람 등이 전부다. 현재로선 상임위 별로 외교부, 통일부를 포함해 7개의 부서에 자료 제공을 요청했지만 사안의 민감성과 야권의 협조가 없는 상황이라 자료 확보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규명위는 이날 열린 3차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자료 수집, 증언 채취 등에 대해 야당에 협조적인 자세를 요청한다"며 "정쟁이나 색깔론이 아니고 국가기강과 국가의 안보에 대한 문제다. 다시 한 번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 열람'에 대한 요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김정재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당시 쪽지나 회의록 발언 등도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저희가 해야겠다"며 "그래야 진실이 밝혀질텐데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 비서실장은 "관계 법령을 검토해서 보고드리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 열람' 카드도 비관적이다. 당시 회의록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데다 설령 회의록이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 15년 범위 내에서 공개하지 않을 수 있어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 회고록에 나온 회의의 경우 생산 기관이 청와대이므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을 적용받는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는다면 제한적인 열람이나 사본 제작, 자료 제출 등이 가능하지만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129석)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나마 야당의 동의를 얻더라도 '기권' 결정이 확실하게 내려지지 않았던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 회의록만 열람이 가능하다. 나머지 16,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와 20일 싱가포르 현지 회의 모두 비공식 회의에 가까워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은 물증은 2007년 11월 20일 당시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송 전 장관에게 보여준 메모다. 메모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는 지난 19일 열린 국정원 국감에서 자료제출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진상 규명에 진전이 없다 보니 여론의 관심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전국유림총화대회 직후 기자들을 만났지만 이 자리에서 '송민순 회고록'에 대한 입장 표명을 묻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의 거취, 제3지대론, 개헌 등에 대해 질문하는 취재진들을 향해 "이제 회고록은 묻지 않네. 지나갔나보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새누리당이 문 전 대표의 안정적 이미지 훼손, 최순실 의혹 차단, 보수층 결집 등 대략 세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사안을 끌고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대선에서 NLL문제가 쟁점이 됐을 때 박근혜 당시 후보와 새누리당에서 얻은 효과는 문재인 후보의 불안한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도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다. 중도층은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NLL 문제가 '종북 프레임'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이면서 중도층이 선호하는 안정적인 이미지를 이번 '송민순 회고록' 파문을 통해 훼손시키는 데 (여당의) 의도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언제까지 해당 사안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수명이 거의 다 됐다"고 판단했다. 엄 대표는 "대외비가 지켜져야 하는 과거 외교적 사안에 대해 집권여당이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장수연 기자 (telli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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