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 낙제성적 받고 막내린 20대 국회 첫 국감
입력 2016.10.14 18:36
수정 2016.10.14 19:24
사상 최악 국감…여당은 정부 감싸기, 야당은 증인 채택에 화력 낭비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며 일주일 늦게 열린 2016 국정감사가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4일 사실상 마무리됐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 백남기 농민 사인 논란, 김제동 영창 발언 등 민감한 이슈들을 갖고 여야가 정쟁을 일삼는 바람에 정작 필요한 민생 정책에 관한 점검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민단체 모임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이번 국감 학점으로 여야 모두에게 최하점인 'F'를 줬다.
지난달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 장관의 해임안을 처리하는 도중 "세월호 아니면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새누리당이) 안 내놔. 그러니까 그냥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지, 뭐"라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되자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새누리당은 이날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국감을 전원 불참하면서 국회는 개점 휴업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이 대표가 단식 농성을 지속했던 일주일 동안 국감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여당 소속 김영우 국방위원장이 국방위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야당만 참석한 반쪽짜리 국감이었다. 국감은 10월 4일이 돼서야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국민들은 국감을 통해 정부부처가 정책 수행 과정에서 예산 낭비는 하지 않았는지, 민생현장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은 없었는지, 민생에 불편과 손해를 끼친 정책 오류는 없었는지 등을 파헤쳐주길 바랐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했다. 야당은 정권 수뇌부를 향해 의혹 공세에 열을 올렸고 여당은 이를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 정책 질의은 거의 주목 받지 못했다.
지난 6일과 7일 양 일에 걸쳐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경우 피감기관이 시·도교육청임에도 교육 현장 점검보다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둘러싼 증인 채택 공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한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던진 이른바 '황당 질의'만 반짝 이슈가 될 뿐이었다.
11일 교문위 국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은 국립대학법인으로 국감이 진행됐으나 고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을 놓고 여야는 거의 하루 내내 공방을 벌였다. 이 대표는 성낙인 서울대 총장을 향해 최근 언론에 나오는 인권 가이드라인에 대해 물었고, 같은당 강길부 의원은 국립대학의 막대한 예산에 대해 지적했으나 반향은 적었다.
결국 여당의 김세연 의원은 "교문위가 국회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상임위"라며 "부산대 총장과 인천대 총장 등에게 질의할 것이 많은데 (백남기 사태라는) 큰 현안이 있다 보니까 시간에 쫓기게 돼 안타깝다"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타 상임위도 대동소이했다. 5일 국방위에서는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이 방송인 김제동 씨가 과거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대장의 배우자를 아주머니로 호칭했다가 13일 간 영창을 다녀왔다는 말을 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정쟁에 불씨를 당겼다. 이후 김 씨는 각종 행사장에서 대중을 향해 '국감장에 증인으로 부른다면 출석하겠다'면서 논란을 키워 국방위 국감의 핫이슈가 됐다.
14일 국방부 종합감사에서 김영우 위원장은 '병역세 도입'이라는 정책 아이디어를 냈지만 '국방위 국감=김제동'이라는 공식에 파묻혔다.
이밖에 같은날 보건복지위원회에선 고 백남기 씨를 추모하는 묵념 여부를 놓고 여야가 대립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선 각각 증인으로 출석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지난달 27일)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지난 4일)을 향한 위원들의 강한 압박만이 주목 받았다. 12일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같은 경우였다.
"결정적 한 방 없이 변죽만 울린 국감"
이번 국감은 사상 최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F'를 받은 것은 모니터단 활동이 시작한 15대 국회 말 이래 18년 만에 준 최악의 점수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 당시에도 학점은 'D'나 됐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감에 대해 "테두리에 갇혀서 변죽만 울렸다"고 평가했다.
황태순 정치 평론가는 14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여당은 그야말로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증인 출석 막기에 급급했고 야당은 최순실, 차은태, 우병우라는 블랙홀에 빠져서 변죽만 울리고 산탄총 쏘듯이 따끔따끔 (국감에 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부분 언론에 나왔던 얘기만 가지고 결정적 한 방도 없이 변죽만 울렸던 것이 아닌가"라며 "그러다 보니까 여당이 그런 역할을 안하면 야당이라도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한진 해운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안보 문제에 대해 소홀히 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도 같은 방송에서 "국회가 국정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당이 이렇게까지 무책임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점과 회의감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 국민들은 국감 필요한 거냐라는 얘기까지 지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증인 출석이 국감을 파행으로 만드는 이런 상황들이 그대로 여실히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드러났다"며 "주객이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감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쟁에 모두가 가려져버리는. 그래서 국민들의 어떤 민생의 문제는 따져지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 국민들은 상당히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여야는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열린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이번 국감 역시 민생은 실종되고 대선을 겨냥한 정쟁만 난무했다는 국민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며 야당을 겨냥했고 조배숙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청와대 사수 작전에 가로막혀 국감에서 증인채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맹탕 국감', '방탄 국감'이 되고 말았다"고 여당에 화살을 돌렸다.
한편 우 수석의 증인 출석 문제가 걸려있는 운영위원회를 비롯해 일부 상임위는 아직 국감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정무위와 법제사법위, 그리고 정보위·여성가족위 등 일부 겸임 상임위가 다음주 중 국감을 이어갈 예정이다. 남은 국감 기간에도 각종 사안을 두고서 여야의 부질없는 공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