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은 왜 하필 조정석에게 생겼을까
입력 2016.10.05 08:24
수정 2016.10.05 08:28
<김헌식의 문화 꼬기>로맨틱 코미디와 하이컨셉의 원칙이 인기 비결
로맨틱 코미디가 트렌드라는 말은 매체마다 자주 언급된다. 사랑이야기가 코믹하게 전개되니 재미를 더하므로 트렌드가 될만할 듯 싶다. 요즘 수용자나 시청자들의 심리는 어렵거나 진지한 것을 싫어하니 말이다. 이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일반 드라마에 로맨틱 코미디 성격을 가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로맨틱 코미디가 반드시 성공할 수는 없으며 그안에는 키 컨셉이 있어야 한다. 그 키컨셉은 누구나 궁금증을 일으킬 수 있는 하이 컨셉이 맞아야 한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는 이러한 키 컨셉 내지 하이 컨셉이 설정되었다. 만약 방송국 이야기가 핵심 컨셉이라고 하면 매우 잘못된 진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질투의 화신'에서 키컨셉 나아가 하이컨셉은 가슴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표나리(공효진)은 남자 가슴에 집착하는 노처녀로 보였다. 그녀의 폭탄 발언 즉, 남자 가슴을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했다는 도발적인 발언은 웃음을 터트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적인 코드는 언제나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여성이 남성의 가슴에 집착하는 듯한 분위기는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이컨셉은 사람들의 본능을 직관적으로 건드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인 내용이야말로 이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성적 코드이면 곤란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를 성적인 코드로 해석하게 만든 것은 작가의 명민한 기지였다. 전혀 다른 결과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성성에 관한 편견적 안주를 불식하는 점이었다. 끔찍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유방암이라는 소재는 자칫 식상해지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의 재발견을 가능하게 했다. 유방암에 대한 보통의 인식을 깨어냈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발생하는데, 뜻하지 않게 종종 남성에게도 발견된다. 극중에서 의사의 입을 통해서 언급이 되듯이 우리나라에도 100여명의 남성 유방암 환자가 있다. 표나리가 가슴에 집착한 것은 정확하게는 종양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도 그 종양 때문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화신의 가슴에 유방암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평소에 넓고 튼실한 가슴을 자랑하던 이화신(조정석)은 자신의 가슴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고, 외국에 나가서도 가슴이 좁은 남자들을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표나리의 예측대로 그가 유방암에 걸려 버림으로써 평소 호기롭게 자랑하던 가슴이 골칫덩어리를 넘어 생명의 위협을 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절친 고정석(고경표)와 표나리를 두고 갯뻘 결투까지 벌여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표나리는 단지 이화신의 가슴 종양을 알아낸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가슴에 종양이 있었다. 둘은 어느새 같은 종양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동병상련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갑자기 그것도 뜬금없이 부잣집 재벌가 도련님이 여성 주인공에게 사랑이 느끼는 드라마 유형과는 다르다. 인간의 감정은 무엇인가 같이 공유하는 경험이 존재하고 있을수록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많다. 같은 질병을 겪어내는 과정은 두 사람이 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것도 암이라는 치명적인 질환을 말이다.
더구나 암은 평생 동안 관리를 해야할 대상이다. 서로에게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유한다면 가까워질 여지는 더 많아질 것이다. 같이 동반적인 위치냐(이화신), 자신을 케어해줄 수 있는 우월한 존재(고정원)이냐가 사랑의 작대기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슬픔과 웃음이 교차하면서 때로는 페이소스를 때로는 유희를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라고 할 수 없는 셈이 된다.
트렌드를 분석할 때 주의할 점은 개념의 골격에 집중하거나 변수만을 잡아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핵심 얼개인데 그것이 좀 더 차별화 되어야 한다. 이미 있는 틀에 핵심적인 하이 컨셉이 있어야 살아 움직이게 된다. 이런 하이컨셉이 없으면 밋밋한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 하지만 이런 기본 원칙이 간단히 무시되고는 한다. 그런 하이 컨셉 뒤에 어떤 장르로 할지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하이 컨셉이 희비극적인 요소가 같이 있다면 더욱 수용자나 시청자는 몰입할 수 밖에 없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