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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북녀' 진짜 부부들 "싸우면서도 통일을 이뤄가요"

박진여 기자
입력 2016.09.19 04:16
수정 2016.09.19 04:16

탈북민, 성공 정착 지름길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는 것

부부싸움의 8할은 '문화차이'...서로 이해할 때 더 돈독

지난해 6월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북한이탈주민 100쌍 합동결혼식'에서 신랑·신부들이 행진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탈북민, 성공적인 남한 정착의 지름길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는 것
'남남북녀' 부부싸움의 8할은 '문화차이'...서로 이해할 때 더 돈독해져

#‘북녀’ 여소영 씨(가명, 35). 한국에 정착해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부끄러워 얼굴도 못 쳐다보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한마디로 ‘아무것도 몰라요’였다. 하지만 부부가 된 지금은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대장부’ 면모로 주도권을 쥔 지 오래. 북에서 몰래 보던 한국드라마 속 한국 남자들에 대한 환상은 깨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이만큼 정착한 건 다 남편 덕이다.

#‘남남’ 채종훈 씨(가명, 47). 대부분의 남자가 다 그렇듯 처음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을 것처럼 지금의 아내를 쫓아다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부부가 됐지만, 부부간에도 프라이버시는 있는 법. 아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니거 내거’ 없이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려 할 때, 특히 휴대전화를 확인할 때 연애 때 눈도 못 쳐다보던 사람이 맞나 싶지만, 그래도 이만큼 가정에 헌신적인 여자가 또 있을까 싶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속에 담긴 의미와 표현방식이 달라 싸우고, 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커플, 남남북녀 이야기다.

이들은 말투, 표현방식, 가치관 등의 차이로 하루에도 몇 번씩 오해가 생긴다. 다른 커플이라고 그러지 않겠느냐만 이들의 갈등은 각자 살아온 세월보다 긴 분단 70년 세월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생김새, 언어, 역사도 같지만 생활방식에서 큰 차이를 느낄 때는 새삼 분단의 현실이 실감나고, 같은 민족끼리 만났음에도 국제결혼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그래서 더 이해하고, 애틋해지는 이들은 오늘도 가정 안에서 ‘작은 통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가깝고 빠르게 통일을 실현하고 있는 이들 남남북녀 커플을 ‘데일리안’이 만났다.

'남남북녀' 커플인 채종훈(47) 여소영(35) 씨 부부의 결혼사진. 엔케이결혼 제공

탈북 5년차 양강도 출신 여 씨는 한국생활 4년 만에 지인의 소개를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여 씨에게 결혼을 권한 지인은 남남북녀 결혼정보업체인 ‘엔케이결혼’의 커플매니저로, 여 씨와 같은 해 탈북했다. 가족 없이 홀로 한국에 정착한 여 씨에게 주변 사람들은 외로움을 덜기 위해, 성공적인 한국 정착을 위해 결혼을 권해왔지만, 여 씨는 한국인이 된 후에도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을 붙이기 어려웠다.

지인의 거듭된 권유로 마지못해 나선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인 채 씨를 만났다. 결혼 1년차 새댁인 여 씨는 연애시절을 회상하며 채 씨를 드라마 주인공이라고 소개했다가 이내 ‘과거형’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처음 만났을 땐 위쪽(북한)에서 몰래 보던 한국드라마 속 남자 같았어요. 이거 해줄까 저거 해줄까 해주겠다는 것도 많고, 이건 어때 저건 어때 계속 제 기분을 맞추는 걸 보고 무뚝뚝한 북한 남자들에 비해 참 살갑고 다정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살아보니 이런 배려가 오히려 여 씨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남편이 좀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불만이 있으면 확실히 표현을 해야 하는데 빙빙 돌려서 말할 때가 많아요. 북쪽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순순히 다 표현을 해서 좀 냉정해보여도 오해 살 일이 적은데, 여기서는 앞에선 웃고 뒤에서 욕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또 가족 간 개인주의도 이해하기 어렵다. 여 씨는 “북쪽에서는 가족이 되면 서로 비밀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남편은 핸드폰이라고 볼라 치면 무슨 프라이버시라고 하면서 부부간에도 지킬 건 지키자고 하는데 우리가 남이예요?”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남편 채 씨 입장에서는 아내의 숨김없는 태도가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채 씨는 “아내가 좀 직설적인 성격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 북한 여성들이 표현을 좀 강하게 한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조선시대에서 온 여자처럼 순수의 결정체였는데, 지금 보니 처음 만난 사람한테도 의견이 안 맞으면 면전에서 면박을 주고 대놓고 욕도 하고, 북쪽 말투나 억양이 세서 무슨 말을 해도 짜증을 내는 것 같고 그래서 지적을 하면 본인은 화가 안 났다고 억울하다”고 서운한 감정을 늘어놨다.

그래도 부부는 이 같은 갈등의 시간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만들어준 값진 시간이라고 말한다.

여 씨는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남한에서는 이런 경우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북한에서는 이렇구나 하고 서로 배우게 되는 것도 많다”라면서 “저는 혼자 한국에 있을 때보다 지금 1년간 남편과 지낸 시간에 한국을 더 많이 배웠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꼭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남남북녀' 커플인 유정현(43) 황은지(35) 씨 부부의 중국 여행 당시 사진. 엔케이결혼 제공

결혼 4년차로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는 또 다른 남남북녀 커플인 유정현 씨(가명, 43)와 황은지 씨(가명, 35)는 여전히 부부싸움의 8할이 문화차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반 부부’도 그렇지만, 서로 다른 체제 아래 두 남녀가 만났으니 어떻겠냐고 반문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남편이 남한 남자라서, 아내가 북한 여자라서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최근 다툰 이유는 이사를 준비하면서다.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이 있다지만, 계약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떼는 일, 계약금을 지불하는 일 등 기본적인 절차에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황 씨는 "우리가 이번에 집을 1년 계약했는데, 그 1년 안에 사정이 있어 나가게 되면 계약을 도와준 사람한테 계약금의 일부를 내야한다고 남편이 말했다"면서 "계약금도 겨우 내는 건데, 서로 사정을 알면 좀 봐 줄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 안 내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이런 게 다 '약속'이라면서 가만 좀 있으라고 말렸다"고 말했다. 탈북 5년차인 황 씨는 여전히 ‘자본주의’가 낯설고 어렵다.

이럴 때마다 진땀을 빼는 건 남편 유 씨다. 집 계약뿐 아니라 결혼식부터 시작해 가족이 되는 모든 과정에서 이 같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다.

유 씨는 “탈북자들은 구청에서 서류 뗄 일이 많은데, 오늘은 신분증, 내일은 증명서 안 가져왔다고 다시 오라고 하면 아내는 그 자리에서 저번에도 왔는데 좀 봐달라고 한다"면서 "그럴 때는 당연한 일 가지고 아내가 그러니까 사실 창피하다. 그래서 한 마디 하면 '북한사람이라고 무시 하냐'고 나올 때도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유 씨는 아내가 북한 여성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북한은 어떻게 보면 한국의 과거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 여성들을 보면 과거 여성들처럼 보수적인 부분이 많다"면서 "남편을 공대해주고 의리가 있다. 연애할 때는 처음 한 세 번 정도 만날 때까지 얼굴도 못 쳐다보고 밤늦게는 연락도 안 받아주는 거 보고 참 순수하다 싶어서 쫓아다니다가 결국 결혼했다”고 말했다.

아내 황 씨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결혼이 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인데 이방인 취급당하고 무시당하면서 한국에 왜 왔나 싶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면서 "외로울 때 남편을 만났고 이제 애들도 생기고, 든든한 울타리가 생기면서 이제 정말 한국인이 된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이들 커플을 성사시킨 남남북녀 결혼정보업체 ‘엔케이결혼’ 측은 “언어 성씨 음식 등 모두 같지만 문화적 차이로 힘들어 하는 탈북여성들이 많다”면서 “탈북여성들 중 이런 상처를 받아 마음을 닫고 잠복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남북녀’ 커플이나 탈북자 커플 등이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잘 정착하는 것이 통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서 “이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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