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은 왜 충격 성범죄를 저질렀을까 '커터'
입력 2016.03.20 08:02
수정 2016.03.24 13:29
충무로 신예 김시후 최태준 문가영 출연
정희성 감독 장편 데뷔작…범죄 드라마
집안 사정으로 인해 도시로 이사 온 윤재(김시후)는 아픈 엄마의 병원비가 걱정인 고교생이다. 윤재는 낯선 환경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한다.
그런 그에게 세준(최태준)이 다가온다. 훤칠한 외모로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는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차갑다. 친구가 없는 세준은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가진 듯한 윤재에게 끌린다.
이후 둘은 절친이 된다. 세준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윤재를 구해주고, 윤재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세준은 돈이 필요하다는 윤재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준다. 세준이 아는 형들과 함께 하는 아르바이트는 술자리 여성들을 유혹하는 일이다. 윤재는 여자들을 유혹하고 자리에서 빠진다. 일당은 수십만원. 엄마의 치료비 때문에 돈이 필요한 윤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일거리다.
윤재는 형들의 심부름으로 술 취한 여성들을 모텔로 '배달'하는 일까지 맡는다. 그곳에는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술 취한 여성들을 노린 성범죄였던 것.
충격을 받은 윤재에게 세준은 "우리가 잡혀갈 일은 없다"며 윤재를 안심시킨다. 윤재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엄마의 병원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쉽게 끊지 못한다.
끈끈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세준을 좋아하는 여학생 은영(문가영)으로 뒤틀린다. 은영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 윤재는 세준에게 자꾸 거짓말을 하고 세준은 윤재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영화 '커터'는 술에 취한 여자들이 사라지는 밤, 그들을 노리는 검은 손길과 그 속에 말려든 고등학생들의 충격 살인 사건을 그린 범죄 드라마다. 제20회 부산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이효종씨 가족의 저녁식사'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정희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작은 '리턴'의 이규만 감독이 했다.
영화는 최근 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성범죄 괴담을 소재로 했다.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합석을 제안한 후 술에 약을 타 정신을 잃게 만들어 모텔에 데려가 성폭행한다는 내용이다.
'커터'는 성인이 아닌 10대를 소재로 한 다소 충격적인 설정이다. 방황하는 시기, 폭력과 성범죄 앞에 노출된 10대들을 통해 그들의 보호막이 돼주지 못한 사회를 꼬집는다고 감독은 말했다.
정 감독은 "자극적인 소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 친구의 심리에 중점을 둬 연출했다"며 "학생들이 왜 그런 사건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커터'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고 불안한 10대들을 담았다.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아르바이트에 빠진 윤재,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세준 등이 그렇다.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는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두 친구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전반부엔 윤재, 세준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윤재에게 집착하는 세준의 감정은 우정보다는 사랑, 집착에 가깝게 느껴진다. "집 앞에서 기다릴게"라는 대사, 은영을 좋아하는 윤재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 등에서 우정을 넘어선 감정이 나온다.
후반부에는 살인 사건이 나오면서 비극적인 결말로 씁쓸함을 남긴다.
'고등학생 충격 살인 미스터리'라는 홍보 문구와는 다른, 모호한 정체성의 영화다. 살인 미스터리보다 비틀거리는 두 학생의 이야기에 가깝다. 세준이 윤재에게 느끼는 감정,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조금은 불편하다.
무엇보다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읽히지 않아 아쉽다. 정 감독은 무관심한 사회, 어른들을 짚어 보고 싶다고 밝혔지만 영화는 두 학생의 심리만 다뤘을 뿐 주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 두 학생이 환경, 사회, 어른들 때문에 범죄에 노출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른은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이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어른들의 모습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는 정 감독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이유다.
3월 3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0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