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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역사, 영국 식민지에서 마오리족 보호까지

스팟뉴스팀
입력 2016.03.07 17:36
수정 2016.03.07 17:37

세계 최초 여성 참정권·일일 8시간 노동제도 확립

뉴질랜드의 역사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영국 왕자 해리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게티이미지코리아

뉴질랜드의 역사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이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것이 처음 뉴질랜드가 알려진 일이다. 그는 고향 제일란트의 이름을 따서 그곳을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했으며, 뉴질랜드는 그 말의 영어식으로 번역이다.

이후 다른 영국의 탐험가 등이 뉴질랜드를 찾으면서 1840년, 마오리족은 ‘와이탕기 조약’을 체결해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했다. 19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토지매매와 관련해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년부터 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의 마오리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 감정 완화를 위해 힘썼고, 영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을 통해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됐다. 이러한 마오리족과 영국의 공존관계와 갈등 해결 방식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였으며, 복지국가 및 일일 8시간 노동제도 역시 세계 최초로 확립한 국가다.

뉴질랜드의 개척이 진전되면서 1947년 영국에서 독립했고, 제1차,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하기도 했다.

현재 백인은 전 인구의 87%이며, 그 중 영국계가 90% 이상이다. 하지만 원주민인 마오리족 문화 또한 잘 융화되어 있다. 교육에서는 백인과 마오리족이 차별 없이 함께 공부하며, 사회 각 방면에 걸쳐 마오리족이 진출해 있다.

1950년 한국 전쟁에 포병 1개 대대, 군함 2척을 포함한 연인원 6020여 명과 참전했으며, 한국과는 1962년 정식 수교를 맺은 이래로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

뉴질랜드는 유엔 및 국제기구에서 한국과 상호 협력하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한국이 국제연합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과 다른 국제기구 이사국에 진출하거나 한국 인사가 진출하는 것을 대부분 지지한다.

스팟뉴스팀 기자 (spotnew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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