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선거구, 국회도 여도 야도 깜깜이
입력 2016.01.04 18:59
수정 2016.01.04 19:00
선거구 실종 상황에 여야 공천 기구는 계파 싸움장으로 변질

'민주주의 꽃'이라 하는 총선이 100일(4일 기준)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아직도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해 사상 초유의 선거구 실종사태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으며 여야의 공천기구는 계파 싸움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는 현행 지역구 246석을 토대로 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안을 놓고 지난 2일 8시간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 의장의 안은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자치시군구의 분할 기준에 예외를 둬서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인구 편차(2:1)를 맞춰 달라는 내용이다. 이를 적용하면 선거구가 늘어나는 수도권의 분구 대상 중 3곳을 막아 농어촌 지역구가 유지된다.
여야 동수로 구성된 획정위(위원장 포함 9명)는 독립기구라는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각 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각론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획정위는 확보된 의석을 배분할 농어촌 지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호남과 충청권의 의석 배분을 두고 여야 위원들의 팽팽한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대로 인구편차를 2대1 기준으로 맞출 경우 호남 의석은 현행 30석에서 5석 줄어들고 충청은 24석에서 25석으로 늘어난다. 이에 대해 야당 몫 위원들은 호남 의석 감소를 5석이 아닌 3석으로 줄여야한다는 입장이고 여당 몫 위원들은 충청도의 인구가 호남보다 많은 만큼 충청 의석을 호남 의석과 맞춰야한다고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 획정위에 오는 5일까지 최종 획정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한 상태지만 획정위 논의는 계속해서 공전을 거듭하고 있어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 내로 선거구가 획정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렇듯 안개가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여야 대표는 4일 다시 한 번 정 의장과 오찬 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정 의장은 이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8일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하려면 내일 정도까지는 선거구 획정 기준이 합의돼야 6~7일에 뭐가 되지 않겠느냐고 여야 대표에 말했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또 "개인적으론 253안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오늘 246안과 253안 둘 다 이야기했는데 결과를 보자"고 설명했다. 정 의장이 선거구가 모두 무효가 된 현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면서 여야 지도부가 조속히 합의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 만큼 선거구 획정 지연 사태가 조만간 종식될 지 관심이 쏠린다.


공천 룰 두고 으르렁 새누리, 탈당 러시 이어지는 더민주
선거구를 둘러싸고 여야'의' 기싸움이 여전하다면 여야 '간' 계파 갈등 역시 그칠 줄을 모르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공천특별기구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계속되는 탈당으로 공천 룰 정비 작업의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재의 공천룰 논의는) 이런 거대한 쓰나미가 있는데도 조타실에서 서로 키를 잡겠다고 싸우는 형국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친박과 비박이라는 균형 맞추는데 중점을 둔 공천특위로서는 변화와 혁신으로 공천룰을 만들 수 없다. 즉각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천기구는 6차 회의까지 진행만 됐을 뿐 경선시 당원 대 일반국민 비율과 결선투표시 가산점 부여 등에서 친박계와 비박계 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친박계는 최대한 공천 룰 제정을 늦추려고 하고 있다. 총선이 점차 다가오는 상황에서 경선을 진행할 시간을 소모해 김무성 대표의 국민공천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다.
공천기구에 속한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3일 6차 회의에 앞서 "선거구획정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천룰을 이렇게 조급하게 정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비박계' 황진하 위원장은 이날 회의 직후 브리핑을 갖고 "가급적 룰을 빨리 만들어야 총선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공천룰 확정이) 시급하다는 것에 같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6일 오후 2시에 회의를 속개해 오늘 논의된 사항을 기초로 해서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가질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조속한 시일 내 공천 룰이 결정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제1야당인 더민주에서는 공천에 관한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내려간 지 오래다. 지난달 13일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현재까지 무려 11명이나 탈당을 했고 추가 탈당마저 예상되는 상황이다. 3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신)의 공동창업주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탈당을 선언했다. 김 전 대표의 탈당은 곧 '비노계' 의원들의 연쇄 탈당을 의미한다.
김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더민주 수도권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수도권 의원 상당수가 심각히 고민하고 있어서 그 결과가 머지않아 밝혀지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이달 중 탈당이 이어질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는 "이 달 중이라면 너무 길게 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연쇄 탈당 현상이 머지 않아 닥칠 것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더민주 내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기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언제 누가 탈당을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직 의원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는데다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은 현역 의원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두 당 모두 표면적으로 공천 관련한 기구를 만들어 구색을 맞추고는 있지만 실제로 작동되는 모습을 보면 '삐그덕'거리며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국회와 더불어 각 당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가에서는 '역대 최악의 총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학자는 4일 '데일리안'에 "선거구를 둘러싼 여야의 무리한 경쟁과 정당 내 그칠 줄 모르는 계파 싸움에 국민들의 불만은 현재 최고조인 상태"라며 "정치인들이 말로만 변화한다고 할 뿐 여전히 낡은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