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파행 불길 껐지만 속으로는 불씨 활활
입력 2015.06.28 10:08
수정 2015.06.28 10:08
전북도교육청 입장선회…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충돌 전망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해온 전라북도교육청이 결국 입장을 선회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여전히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관련한 정치권의 충돌이 수면 아래에서 대기 중이라 향후 국회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파행이 불거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유·초·중·고·특수교육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지방채 발행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 4월부터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중단해 지금까지 지역 어린이집연합회 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던 김 교육감이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꾸자 일각에서는 소신을 져 버렸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실제 김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게 된 배경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만남이 상당한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3일 그는 전북도교육청을 방문한 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당시 문 대표는 “누리과정 논란의 근원인 시행령 폐기를 위해 국회 차원의 법률적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육감 스스로도 “문재인 대표가 ‘당에서 막아내겠다. 그러니까 금년분은 교육감께서 한 발 양보해달라’고 해서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며 “소신을 바꿨다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대국적으로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의 이 같은 결정으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지만, 앞으로 남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표는 앞서 김 교육감에게 올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대신 지방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도록 규정한 시행령의 폐기를 위해 당 차원에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실제 새정치연합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영유아보육법 등 누리과정 관련 시행령이 모법을 위배하고 있다고 주장, 이 같은 맥락에서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누리과정 예산 편성의 책임이 정부에 있느냐 지방 교육청에 있느냐’를 두고 정부와 지방교육청 간 힘겨루기가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6년도 예산안에는 누리과정 예산 지원 부분이 빠져있어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의 국비 지원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2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누리과정 예산은 기본적으로 교육부에서 각 시도교육청에 내려지는 지방재정교부금 안에 다 포함돼 있다”며 “현재 2016년 예산안이 그(누리과정 예산 지원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로 넘어갔다는 자체는 국고 지원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2016년도 예산안이 기재부의 사정(예산 합의)을 거쳐 오는 9월 국회에 제출되고 정기국회 회기 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다 하더라도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새정치연합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두고 반발해 국회 상임위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면서 예산안 심사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본보에 “일부 지방교육청과 야권에서 무상보육 예산을 책정하는 부분을 정치적 갈등 요소로 만들려는 모습들이 보인다”며 “사실 이것은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보육기관과 학부모에게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실장은 “아마 야당은 내년 총선까지 지방정부를 돌며 논란이 되는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중앙정부가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것”이리며 “제도의 필요성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대통령의 공약이고 여당의 추진 사업이라고 해서 비판만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의 예산 편성 결정 발표를 계기로 누리과정 파행이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서의 갈등이 내재돼있어 향후 추이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