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단두대 오른 ‘감독 수난시대’ 소모품 전락?

이일동 기자
입력 2014.10.27 09:09 수정 2014.10.27 09:13

선동열 감독 재계약 일주일 만에 사퇴 파장

성적으로만 평가, 이제는 팬들 눈치도 봐야

가을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야구계는 이미 가을걷이에 들어갔다.

넥센과 LG의 플레이오프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즈음, 벌써 내년을 준비하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2주 이상 늦어져 준플레이오프가 한창인 가운데도 내년을 위한 대비로 분주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4개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팀의 사령탑이 교체됐다. 하위팀 감독의 ‘집단 교체’라는 거대 이슈가 블랙홀이 되어 가을야구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

뚜렷한 성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감독들도 임기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 연합뉴스

'이슈의 블랙홀' 감독 집단교체

우선 이만수 전 감독이 사퇴하고 김용희 신임 감독으로 교체된 5위팀 SK와 송일수 감독이 물러나고 젊은 사령탑에 오른 김태형 감독의 두산은 비교적 큰 잡음은 없는 편이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엔 실패했지만 빠른 수습과정을 통해 재반격의 기회는 일단 갖춘 셈이다.

하지만 7위와 8위에 오른 팀은 떠나는 감독의 뒷모습이 개운치 않았다.

롯데 사령탑을 맡았지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김시진 감독은 자진사퇴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오갔다. 급기야 선수들은 공필성 코치의 감독 선임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시즌 구상을 세워야 할 롯데 입장에선 벌써 시작부터 꼬인 모양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선동열 전 KIA 감독의 자진 사퇴다. 이미 KIA 구단은 선동렬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발표, 재신임한 바 있다. 하지만 팬들의 반발과 안치홍 선수의 임의탈퇴 관련 발언 후폭풍이 겹치면서 '재계약 6일 만에 자진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9위팀 한화 역시 거대 이슈의 중심에 섰다. 역대 최고 감독으로 불리는 두 명장이 서로 임무교대를 한 것. 바로 김응용 전 감독이 물러난 자리에 ‘야신’ 김성근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이 사령탑에 올랐다. 김응용 전 감독과 김성근 신임 한화 감독은 한국 야구계의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의 거장들이다.

김응용 감독이 실패하고 물러난 한화를 김성근 감독이 살려내면 두 감독의 평가는 확연히 달라질 정도로 한화의 내년은 프로야구 감독사를 통틀어 중대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거장이 한 팀을 전후임으로 맡은 적이 없다. 리더십 비교의 준거가 될 사건이다.

감독의 진퇴 과정에서 KIA 못지않게 한화 역시 무섭게 성장한 팬들의 힘이 입증된 대표적 케이스. 과거 구단 고위층의 입김에 좌우되던 시대에서 벗어나 팬들이 요구가 감독 선임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팬들의 작은 혁명으로 볼 수도 있다.


Sun의 신세한탄 '소모품' 발언

현역 시절 ‘무등산 폭격기’, ‘국보’, 그리고 일본 진출 이후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리며 역대 최고 투수로 손꼽히던 선 전 감독. 지도자로 데뷔한 삼성에서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KIA에서 실패한 3년으로 단숨에 날려버렸다. 그것도 야구 인생 최대 생채기를 남긴 채 떠났다.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선 전 감독은 자신의 처지를 소모품에 빗댔다. 안치홍의 군입대 보류를 권유하면서 감독과 선수 모두 구단의 소모품이라고 말한 것. 대부분은 '임의탈퇴'라는 네 글자에 흥분했지만 소모품이라는 세 글자도 큰 충격이었다.

선수만 소모품이 아니라 감독인 자신도 소모품이라는 처절한 심정에 호소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임의탈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선수에 대한 간접 협박이라는 오해를 사 자진사퇴의 빌미가 됐지만 감독인 자신도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했다는 점은 의미가 적지 않다.

2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이만수 SK 전 감독과 김시진 전 롯데 감독, 그리고 송일수 전 두산 감독, 스승인 김응용 전 감독마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신세를 직시한 단어가 바로 '소모품'이다. 현역 시절 항상 중심이었던 스스로를 소모품이라고 빗댄 신세한탄은 비단 그 뿐 아니라 그를 레전드로 여긴 팬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단두대 오른 감독의 수난 시대

프로야구 감독들은 누구나 감독직을 걸고 경기를 치른다. 자신들의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며 단두대에 목줄을 걸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역 선수보다 감독의 선후배 경쟁이 더 치열하다. 선수야 20년 선후배 간 경쟁하지만 사령탑은 25년 이상 터울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올해 감독의 최대 나이차는 41년생인 김응용 전 한화 감독과 69년 생인 김기태 전 LG 감독의 28년 차. 내년 최대 나이차는 42년생인 김성근 현 한화 감독과 68년생인 염경엽 넥센 감독의 26년 차다. 선수 못지않게 치열한 완전경쟁에 돌입한 직업이 바로 프로야구 감독 자리다. 선수 엔트리는 26명이지만 감독은 오로지 한 명뿐. 9개 구단 감독을 다 모아도 한 팀 선발라인업 밖에 안 된다.

게다가 현역 감독에서 물러나서 바로 다른 팀의 지도자로 재취업되는 경우는 희박하다. 자신도 부담스럽지만 이직할 팀 역시 전임 감독이라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감독 경질 이후 야인 생활이 길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야인에서 다시 감독으로 올라서기 까지 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흔한 비정규직의 비애가 프로야구 감독에게도 존재한다.

2000년 이전 가을야구팀이 매 시즌 바뀌고 절대 강자가 없던 시절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 삼성 왕조의 독주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상하위권 팀의 업다운 빈도가 떨어지고 있다. 삼성의 독주가 바로 감독 집단 교체의 또 다른 원인이다. 한화나 KIA 같은 만년 하위팀들이 가을야구에 한 차례라도 진출했다면 집단 교체는 줄어들 수도 있었다.

이종 격투기에 길로틴 초크(Guillotine choke)라는 기술이 있다. 한쪽 팔로 상대방의 목을 압박해 질식시키는 주짓수 기술의 일종이다. 일명 인간 단두대라고도 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누구나 길로틴 초크에 걸린 채 시즌에 돌입한다. 성적이라는 단두대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제는 구단 뿐 아니라 팬들의 단체행동에도 초크를 당하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프로야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주권이 강화된 바람직한 면도 있다. 하지만 구단의 을이었던 감독이 이제는 팬들에게도 을이 될 수 있다는 비애, 그 부담에서 감독들은 더더욱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최근 모 구단에서는 감독 사퇴 운동을 벌이는 팬들이 감독의 가족에게 위협성 문자를 보내 감독의 가족들이 고통 받는 일이 벌어졌다. 팬들의 과잉 행동이 원인이다. 감독이야 무한 책임을 지는 숙명이지만 아무 죄 없는 가족들이 무슨 죄일까.

이일동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