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항명사태’ SK 왕조 몰락의 종지부?
입력 2014.07.16 10:11
수정 2014.07.16 10:13
취재진 있는 자리서 선수가 감독에게 항명
이만수 감독 강조하던 소통-탈권위와 거리 멀어
이만수 감독은 취임 당시 탈 권위와 소통을 강조했지만 현재 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 SK 와이번스
후반기 반등을 노려야할 SK 와이번스에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바로 외국인 타자 루크 스캇(36)의 항명사태다.
스캇은 15일 문학구장에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현재 발바닥 부상으로 2군행을 명받자 라커룸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캇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이만수 감독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이후 언성이 높아졌고, 주변에 있던 취재진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특히 스캇은 이 감독을 향해 “거짓말쟁이” “겁쟁이” 등 부적절한 단어까지 구사했다.
스캇이 화가 난 이유는 구단의 조치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구단에서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골자다. 실제로 스캇은 “나는 메이저리그 9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내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안다. 나는 나만의 루틴이 있는데 구단에서는 다른 재활 방식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야 어찌됐든 스캇의 항명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코치를 거치지 않은 채 감독에게 직접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는 것은 그가 강조한 메이저리그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스캇은 보란 듯이 취재진이 득시글거리는 공개된 장소를 택했다.
사실 스캇은 올 시즌 9개 구단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기대를 많이 모은 선수다. 그는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탬파베이에서 활약했고, 9년간 빅리그 889경기를 뛰며 135홈런을 친 강타자였다. 여기에 배리 본즈를 연상케 하는 타격폼과 확실한 자기만의 야구 철학을 갖고 있어 SK팬들은 개막 전부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 그 자체였다.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7 6홈런 17타점이 전부였다. 또한 잦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 기회 자체가 적었고, 수비 또한 평균 이하였다. 무엇보다 그의 포지션인 좌익수 또는 지명타자 자리에는 이명기, 이재원 등이 보다 나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터였다.
물론 스캇의 항명파동은 선수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그의 불만을 코칭스태프는 왜 모르고 있었는지, 알았더라도 어째서 감독에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이만수 감독은 무슨 이유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도 따져야 한다. 아무리 외국인 선수이고, 성적이 실망스럽더라도 그는 분명 SK의 중심타자였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일찌감치 접었다면 2군행이 아닌 조조 레이예스처럼 방출 통보를 내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만수 감독은 지난 2011시즌이 끝나고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며 “권위의식을 버리고 소통의 야구를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스캇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의 일성은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현재 잘 지켜지지 않은 것처럼 비쳐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감독은 선수와 감독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성준 수석코치를 가교 역할로 임명했고, 지난달에는 포수 조인성의 트레이드가 이뤄졌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모두 탈권위, 소통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은 올 시즌 SK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SK는 다른 차원의 야구를 구사하는 절대 강자였다. 그래서 ‘공공의 적’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이만수 감독이 정식 취임한 지난 2012년,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거기까지였다. SK만의 끈끈한 야구 색채는 점차 희석되기 시작했고 메이저리그 스타일도 아닌 어정쩡한 야구로 인해 성적도 지난해 6위, 올 시즌은 8위로까지 추락했다.
옛 속담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이 있다. 매년 FA 대어들은 팀을 떠났고, 주전급 선수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급기야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선수의 항명파동은 SK의 현재 팀 분위기를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는 재건을 꿈꾸던 SK 왕조 몰락의 종지부를 찍은 사건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