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중? 차인표? 정치권 연예인 영입의 득과 실
입력 2014.07.07 08:59
수정 2014.07.07 09:10
<기자수첩>홍성우서 김을동...연예인 출신 의원만 12명
연예인 마케팅 탈피 정당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배우 김상중 씨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영입설이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새정치연합이 김 씨에 대한 영입을 추진 중이라는 일부 보도와 관련, 김 씨의 소속사인 승화산업은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매니저인 변상필 이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있었을 뿐, 관련한 별도의 접촉이나 만남이 전혀 없었다”면서 “김 씨 본인도 전혀 정치에 관심과 뜻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 씨에 대한 정치권의 러브콜은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김 씨는 현재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고 있는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문성근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과거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정치에 입문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대중성과 신뢰도를 활용한 정치권의 마케팅이다.
각종 드라마에서 국회의원, 대통령 경호실장, 변호사 등 묵직한 배역을 맡아왔던 김 씨는 그간 중후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4월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방송을 진행하던 중 희생된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김 씨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정치권의 입장에선 ‘쇄신’보다 좋은 홍보였을 터다. 쇄신이나 혁신, 개혁 같은 귀찮은 ‘액션’ 없이 굴러들어온 돌에 편하게 묻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배우 차인표 씨도 선거철만 되면 각 정당의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인사다. 반듯하고 성실한 이미지, 수많은 선행과 기부활동, 웬만한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가지지 못한 덕목을 열 손가락에도 미처 꼽지 못할 만큼 가졌으니, 정치권에서 충분히 탐낼 만해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실제 차 씨에게 지난 19대 총선 당시 선거 출마를 제의했으나, 차 씨는 “정치를 하려면 환갑은 지나서 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차 씨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48세. 이 말이 사실이라면 2027년이 돼서야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니, 사실상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싶다.
이밖에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도 선거 때마다 영일설의 단골메뉴로 오르내린다. 앞서 언급한 세 인물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배우 정준호 씨도 정치권과 연결 지어 언급될 때가 많다.
홍성우에서 김을동까지…연예인 출신 국회의원만 12명
최초의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은 홍성우 전 민주공화당 의원이다. 배우 출신인 홍 전 의원은 1978년 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12대 국회까지 내리 3선을 지냈다. 하지만 1988년 재산 부정축재 비리로 타격을 입고 13대 총선에 불출마, 14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정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마찬가지로 배우 출신인 이대엽 전 성남시장은 11~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성남시장으로 활동했다.
13대 국회에서는 영화배우 최민수 씨의 부친인 고 최무룡 씨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신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자신의 고향인 파주에 출마했던 그는 중앙대 법대 출신으로, 영화배우 활동기간 중 끊임없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4대 국회에 들어서는 연예인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계에 입문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한 것이다. 이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인물로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 배우 최불암 씨, 강부자 씨 등이 있다.
이 씨는 경기도 구리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으며, 최 씨와 강 씨는 현재의 비례대표인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특히 임기 내내 국회의원들의 텃새와 따돌림에 시달렸던 이 씨는 임기를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면서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국회를 떠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와 함께 배우 이순재 씨는 서울 중랑구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해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15대 총선에서는 배우 출신인 신영균 씨와 정한용 씨가 각각 한나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으로 표현되는 배우 신성일 씨는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 19대 국회에서는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이 유일한 연예인 출신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김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구병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에 발을 디딘 배우 최종원 씨는 19대 총선에도 출마했으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밖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지는 못했으나 연예인 출신으로 선거에 출마했던 인사로는 배우 이덕화 씨와 문성근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이 있다. 연극배우로 전향한 유인촌 씨는 전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었다. 또 오는 7.30 재보선에는 배우 출신 정치부 기자로 알려진 이재포 씨가 출마한다.
연예인 마케팅 먹혀들수록 정치는 후퇴
이처럼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이 많은 것은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정치권과 정치를 해보려는 연예인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그만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정당에서 공천을 줄 의사가 없었거나, 당사자들이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없었다면 연예인의 국회의원 당선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거래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이순재 씨와 최불암 씨, 고 이주일 씨와 강부자 씨, 신영균 씨 등은 임기를 마친 뒤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본업으로 복귀했고, 일부 인사들은 부정부패에 연루돼 떳떳하지 못한 모습으로 정계를 떠났다. 김상중 씨와 차인표 씨가 배우로 남았으면 하는 이유다.
이른바 국민배우를 영입해도, 냉철하고 합리적인 방송 진행자를 영입해도 정당은 그대로다. 목적 자체가 영입 대상자의 이미지를 활용한 선거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들이 변할 이유가 없다. 연예인 마케팅이 먹혀들면 정치는 후퇴한다. 제아무리 ‘개판’을 쳐도 선거 때 연예인만 내밀면 될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세상이 변했다.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 신문을 통해 걸러진 정보를 접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거짓 공약이 난무하고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돼 되도록 유명한 사람, 힘이 센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
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라면 연예인이 아닌 그 누구라도 환영한다. 다만 연예인을 후보로 내세운 정당에 표를 줘야 하는 이유가 방송 속 연출된 이미지라면 100번을 투표해도 표를 줄까 싶다. 정당 스스로의 노력으로 환골탈태해 이미지를 바꿨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