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와 김영삼-김대중이 화해한다면...
입력 2014.04.10 10:01
수정 2014.04.10 10:02
전현직 대학총장 '역사교과서'논란에 입 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풀기 위해 전현직 대학총장들이 나섰다. 9일 한국대학총장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 교육의 올바른 방향' 세미나에서 전현직 총장들은 '역사학계 정치화'를 우려하며 '교육 중립'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은 "교과서선택과정이 정치화되면 선택행위 자체가 어느 정당의 주장을 따르는 정치행위가 되고, 그러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며 "교과서 선택과정이 정치화되면, 교사의 교육행위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이어 "국가의 검정과정을 통과한 특정 교과서를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매도한 행위들은 모두 헌법에서 보장한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교육의 중립성을 지키고, 교사의 정치중립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도 교과서 선택과정의 정치화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한국사 교육현장의 정치화를 막을 해법에 대해 "한국사 해석에 대한 논란을 전적으로 지성계에 맡겨야 한다"며 "한국사 해석의 정치화를 막을 수 있다면, 교육현장에서의 정치중립성은 원천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진보-보수사관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면, 진영논리로 재편되고 지성의 자율성이 사라지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한국사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정치인들이 간섭하지 말고 자신의 선호에 따라 사관을 선택해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는 '미국사 교육사업'이라는 역사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현장답사와 같은 다양한 역사체험을 제공해 시야를 넓힌 계기가 됐다"며 "우리도 국립근현대사 박물관과 연계해 역사교사들에게 다양한 역사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연수과정에서 한국현대사의 주역들에 대한 다양한 사료를 제공하고, 역사교사들이 직접적인 사료를 통해서 역사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며 "특정한 사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료를 해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문제의식을 심어준다면, 역사교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김대중 '현대사의 영웅세력들 화해해야'
그는 "우리의 역사갈등은 본질적으로 한국현대사의 영웅세력들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건국세력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산업화세력, 김영삼-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세력은 차례로 집권했지만, 투쟁적인 집권과정에서 불거진 증오심이 앞선 정치세력의 업적을 폄하하는 악순환을 생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건국-산업-민주화세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한다면 역사갈등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며 "중국에서는 등소평의 실용주의 세력들이 모택동의 원리주의 세력들에 대해 '공7과3'으로 인정하고 포용해 역사갈등을 해소했다. 우리도 교사연수과정에서 역사교사들에게 사관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현대사의 주역들을 포용하도록 촉구하면 역사교육환경은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은 불필요한 이념갈등을 피하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가 다룰 '시대적 하한선'을 둬야한다고 제안했다.
김 전 총장은 "역사를 기술하는 시기의 하한선을 정해놓지 않으면 불필요한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정치학이 아닌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하는 역사학의 속성상 역사교과서 집필 내용에서 이러한 내용을 검토해야 하고, 교과서 기술에 일정한 하한선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이어 "현재 교육부의 한국사 집필 준거에 하한선이 없고, 현 정권의 바로 앞 정권의 역사까지 거론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역사는 현재의 시간과 다소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우리는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를 마구잡이로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권이 끝난 후 30년이 지난 뒤에 역사교과서에서 다뤄야 한다. 30년 이전 사항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만 기술하고 (역사적 평가 등은) 30년 뒤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한국사 교과서의 현실'에 대해 "과도한 애국애족도 문제이지만, 국가부정도 문제다. 어떤 교과서는 6.25에 대해 남침 서술도 제대로 안하는 등 문제가 있는 서술은 우연이 아닌 오랫동안 숙성된 기류였다"며 "현대사 서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부정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앞으로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건국과 발전 과정이 제대로 평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사학계의 자기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대학총장협회는 450여명의 전·현직 총장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1995년 설립된 이후 20년 동안 대학정책과 고등교육 경쟁력, 사회적 이슈 등을 해결하는 지식인 역할을 자청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