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활용’ 박지성…QPR과 에인트호벤 차이는?
입력 2013.08.22 10:06
수정 2013.08.22 10:10
QPR서 저평가 받은 박지성, 에인트호벤서 건재 과시
‘박지성 사용설명서’ 숙지 여부가 가른 결정적 차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박지성(32·PSV 에인트호벤)의 모습은 한결같다. 끊임없는 활동량, 이타적인 팀플레이, 뛰어난 전술수행 능력까지, 박지성은 이른바 '감독들이 사랑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그러나 퀸스파크 레인저스(이하 QPR)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와 에인트호벤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느낌이 달랐다.
박지성이 QPR에서 뛸 때도 스타일이 변했거나 성실함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정적인 차이는 박지성의 가치와 활용도를 평가하는 감독의 시선이었다. 거스 히딩크나 필립 코쿠, 알렉스 퍼거슨 등은 이른바 '박지성 사용설명서'를 숙지하고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QPR에서 만난 마크 휴즈나 해리 래드냅은 그렇지 못했다.
박지성은 이른바 '감독의 선수'다. 감독이 전술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전혀 달라지는 유형의 선수라는 의미다.
박지성은 수비수 3~4명을 홀로 제칠 수 있는 화려한 개인기나 혼자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해결사 기질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박지성이게는 지치지 않은 체력과 탁월한 공간이해능력, 동료들과의 연계플레이라는 그만의 확실한 장점이 있다. 감독이 박지성의 플레이스타일과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카드다.
박지성이 QPR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데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구단의 잘못도 크다. 박지성의 영입을 처음 주도했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와 마크 휴즈 전 감독은 박지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는 했지만, 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타고난 리더나 스타 기질과는 거리가 멀었던 박지성에게 에이스 같은 역할을 기대했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주장 완장까지 맡겨 부담만 더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최초의 아시아인 주장 완장이라는 타이틀은 겉보기에 화려했지만 이적생에다 외국인이라는 제약 속에 박지성이 낯선 QPR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에서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단기간에 과도한 선수 영입이 초래한 QPR 선수단 내 위화감은 박지성에게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다. 휴즈 감독은 임기 내내 선수단 내부의 교통정리에 실패했고, 박지성은 시즌 초반부터 이러 저리 땜빵용으로 포지션을 전전하다가 부상까지 당하며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휴즈의 뒤를 이었던 래드냅 감독은 어땠을까. 그는 박지성의 능력과 가치를 처음부터 존중하지 않았다. 부상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사전 통보 없는 주장직 박탈과 오락가락하는 선수기용은 선수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결여된 행동이었다.
래드냅 감독은 틈날 때마다 박지성을 비롯한 고액연봉자들의 부진을 트집 잡으며 면피에만 급급했으나 정작 스타 선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한계를 노출했다. 저마다 이기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는 QPR의 무늬만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박지성의 헌신과 팀플레이는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8년 만에 에인트호벤으로 돌아온 박지성이 지난 AC 밀란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박지성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박지성과 8년 전 에인트호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코쿠 감독은 박지성의 능력과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박지성은 8년만의 복귀전이자 부담스러운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무대라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동료들과 마치 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안정된 조화를 보여줬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에인트호벤에서 박지성은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전방위 활동량을 앞세워 안정된 경기조율과 연계플레이를 통해 팀의 무승부에 기여했다. 코쿠 감독이 왜 그토록 박지성을 간절히 원했는지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경기였다. 동시에 선수에게 있어서 자신을 알아주는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