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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녀'와 '폭녀' 마가렛 대처 평가는 이제부터

스팟뉴스팀
입력 2013.04.09 10:48
수정

유럽 뿐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 두드러져

지난 8일 숨진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자료사진
8일(현지시각) 타계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79년부터 11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끈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다. 그녀의 별명은 ‘철의 여인’이었다.

대처는 1925년 영국 중부의 시골마을인 그랜섬에서 가난한 식료품점 주인의 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 후 대처는 1953년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에드워드 히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로 선출된다. 이듬해 1976년 소련을 강력히 비판하는 연설로 러시아 신문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1979년 짐 캘러헌 노동당 내각을 불신임해 시행된 총선에서 대처는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총리 당선 이후 대처는 영국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과도한 복지와 파업, 높은 실업률 등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그녀는 강성 노조의 반발에 굴하지 않고, 영국 국영 산업의 민영화를 이끌어 냈다. 뿐만 아니라 감세정책과 각종 금융규제·복지 정책 철폐 등 이른바 ‘대처리즘’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다.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정치적 역량도 과시했다.

보수당은 1983년과 1987년에 각각 실시된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대처는 3기를 연임한 영국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됐다.

하지만 집권 3기에 접어들면서 대처의 강경노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1990년 유럽 통합 반대를 고수하는 대처의 입장이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게 되면서 그녀는 자진 사임하게 되고, 1991년 5월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세계 정치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업적들들 무수히 쌓아오면서도 유럽 사회의 좌파 정치인들에게는 '폭녀'라고까지 비난을 받기도 했던 마가렛 대처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스팟뉴스팀 기자 (spotnew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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