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참사에 류현진까지 터지면 '치명타?'
입력 2013.03.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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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 성적, 관중증가에 큰 영향
류현진 활약 시 메이저리그 팬 급증
'타이중 참사'를 겪은 프로야구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야구 대표팀이 ‘타이중 참사’에 휩싸이며 WBC 1라운드 탈락의 쓴잔을 들이켰다.
예고된 탈락이었다. 당초 우승후보로 거론되진 않았지만 2라운드 도쿄행은 무난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분석이 미흡했음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집중력과 코칭스태프의 상황 판단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충격이 더하다.
이번 탈락은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한국 야구는 매년 관중이 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2007년 410만을 시작으로 525만→592만→593만→680만 등 수식 상승을 그리더니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715만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사실 ‘야구 붐’이 다시 일게 된 가장 큰 요인은 KBO와 각 구단의 노력보다 국가대표팀의 호성적 덕분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암흑기를 보내던 한국 야구는 2006년 제1회 WBC 4강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참가하는 대회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는 사이 관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야구에 대한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는 모양새가 야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장 좋은 예가 9구단과 10구단을 창단하면서 빚은 극심한 진통이다.
현장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야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들어 특급 선수 또는 신인들의 등장은 가뭄의 콩 나는 듯 하며, 자기 색깔이 없는 감독들은 모두들 똑같은 스타일의 야구만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프로야구는 ‘하향평준화’ 현상이 뚜렷했고, 급기야 일부 구단은 프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의 수준 낮은 플레이로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결국 이번 ‘타이중 참사’는 일시적 부진이 아닌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프로야구 흥행에 치명타를 날릴 요소는 또 있다. 다름 아닌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진출한 특급 선수들의 활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저스 괴물 류현진이 우뚝 서있다. 올 시즌 류현진의 활약 여부는 ‘타이중 참사’ 이상 가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90년대 후반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활약하자 국내 야구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눈높이가 올라간 야구팬들은 우물을 벗어나 세계 최고의 무대가 선사하는 ‘야구쇼’에 흥분했고, 이로 인해 ‘박찬호 키즈’들의 미국행 러시가 이어지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실제로 박찬호의 활약은 프로야구 관중 동원과 반대 곡선을 그렸다. 박찬호가 첫 두 자리 수 승수(14승, 1997년)를 따낸 이듬해인 1998시즌, 프로야구는 263만 관중에 그치며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다. 3년 전인 1995년 540만 관중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인 준 수치였다.
김병현의 소속팀 애리조나가 월드시리즈에 우승한 이듬해인 2002년에는 239만 명으로 계속 하락했고,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등이 모두 등장한 2004년에는 결국 233만 관중으로 바닥을 찍고 말았다. 이는 8개 구단 출범 후 역대 최저 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더욱 큰 문제는 당시 한국 프로야구가 이를 대처할 자생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해외에 진출한 아마추어들에게는 ‘해외파 유예제도’를 만들었고, 선수협 출범과 관련해서도 고압적인 자세만을 유지했다.
지금의 상황 역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류현진의 활약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증가와 국내 프로야구 팬들의 감소를 알리는 것과 같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타이중 참사’로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는 벌써 시작됐다는 평가다. 과연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어떤 해결방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