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자만한 한국야구에 울린 경종
입력 2013.03.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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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승1패 성적에도 1라운드 조기탈락 굴욕
두껍지 못한 선수층, 자만심과 준비부족 탓
한국은 WBC 1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야구의 불안한 위상이 냉정하게 드러난 대회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1라운드 조기탈락의 굴욕을 당했다. 3경기에서 2승1패를 거두고도 득실차에서 밀려 고배를 들었다. 한 수 아래로 꼽힌 네덜란드, 호주, 대만과 한 조에 편성돼 1라운드 정도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는 초라한 결과다.
2승을 올렸다고는 하지만 최약체 호주전(6-0)만 완승했을 뿐, 네덜란드에는 충격적인 영봉패(0-5)를 당했고, 대만(2-3)에도 끌려 다니다가 8회 간신히 뒤집고 신승했을 만큼 내용도 시원치 못했다.
에이스의 부재와 타선-수비의 불안 등 전력의 한계도 있지만, 결국 그 뿌리를 파고들면 준비과정에서부터 최상의 선수구성에 실패했고, 잦은 선수교체로 팀워크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선수들의 컨디션도 바닥이었다. 최근 한국야구의 외적인 성장과는 달리 안으로는 질적 하락이라는 문제도 이번 대회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야구는 흥행 면에서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각 팀마다 외국인선수를 제외하면 승리를 책임질 대형 투수가 줄어들었고, 잦은 실책과 엉성한 주루플레이 등으로 부실한 기본기가 도마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반면 기존 선수들을 대체할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최근 몇 년간 정체된 상태였다.
여기에 이번 대회에서는 류현진, 추신수, 봉중근, 김광현 등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를 이끌었던 주축들이 상당수 빠졌다. 선수층이 두껍지 못한 한국야구가 주력선수들의 이탈은 급격한 전력약화를 의미했다. 대표팀이 구성된 이후에도 부상으로 인한 선수교체는 계속됐다. 결국, 불안정한 선수구성은 곧 팀워크의 저하로 이어졌고 한국야구 특유의 색깔조차 희미해진 특색 없는 야구를 초래했다.
약화된 전력에도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높았다. 대표팀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1라운드에서 만날 상대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가 돼있지 못했다. ‘설마 네덜란드, 호주, 대만을 넘지 못하랴’ 하는 자만심이 크게 작용했다.
연습경기에서 대만 실업팀에 무기력하게 덜미를 잡힐 때도 ‘본 경기에서는 다르겠지’ 하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 패착이었다. 뚜껑을 열자 경쟁팀들의 전력은 예상 이상이었고,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허무하게 덜미를 잡힌 대표팀은 뒤늦게 집중력을 발휘했지만 이미 자력으로 1라운드를 통과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뒤였다. 국제대회에서 한 번의 자만심과 잘못 꿴 첫 단추가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를 톡톡히 보여준 순간이었다.
한국야구는 이번 WBC를 통해 또 한 번의 숙제를 안게 됐다. 과거의 영광은 말 그대로 추억일 뿐이다. 급성장한 네덜란드와 대만 야구의 성장은, 한국도 국제대회에서 이름값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기존 선수들을 대체할 새로운 유망주들의 발굴과 대표팀 운영의 개선을 통해 잃어버린 한국야구만의 색깔을 되찾아야한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